병풍(兵風) 수사를 11월까지 계속하고, 박영관(朴榮琯) 서울지검 특수1부장을 유임시켜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문건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국민일보가 11일 보도한 ‘김대업씨 면담보고서’는 병풍수사가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된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어 진위 여부 등을 둘러싸고 새로운 공방의 소재가 될 전망이다.
▽보고서 내용〓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이 보고서가 검찰의 수사에 대한 개입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문건은 특히 “특수수사1부장(박영관 검사)을 뒤에서 지켜줄 서울지검장을 확실한 사람으로 교체할 필요가 있다”며 “현 서울지검장인 이범관(李範觀)은 수사에 반대했던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또 군 병역비리 수사과정에서 김대업(金大業)씨와 대립해온 김창해 법무관리관과 고석(高奭) 대령의 교체 필요성도 언급하고 있다.
보고서의 내용대로라면 병풍 수사를 특정 방향으로 몰고가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손’이 검찰 인사를 좌우했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 법무부는 8월16일 검찰 인사 때 서울지검장을 김진환(金振煥)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교체했다.
문건에는 “수사가 9월 이내에 종결돼 이회창이 흔들리면 한나라당에서 정몽준을 영입할 수 있다”며 “11월까지 수사가 계속돼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11월 초쯤 수사가 종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작성 주체와 작성 시점 논란〓문건에는 작성자가 김대업씨와 직접 접촉한 흔적이 곳곳에 나타나 있다. ‘김대업씨의 향후 대응’란을 보면 “검찰 수사에 계속 협조, 국회청문회, 국정감사 등에 활용해줄 것을 요구” 등 김씨가 나가고자 하는 방향이 명시돼 있다.
때문에 이 문건은 국민일보 보도대로 민주당 병역비리진상규명소위에 소속된 의원실 관계자가 김씨를 면담한 뒤 작성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그러나 문건의 최초 진원지로 알려진 민주당 모 의원측은 “절대 우리가 작성한 것이 아니다”고 펄쩍 뛰고 있다. 민주당은 오히려 “한나라당의 자작극이라는 제보를 받았다”고 역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건의 여러 내용으로 볼 때 이 문건은 민주당 주변에서 작성된 것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천용택(千容宅) 의원이 6월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대업씨를 병역비리조사특보로 임명해 위촉장을 수여할 방침’이라고 보고하기도 해 민주당이 김씨를 접촉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문건 작성 시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문건이 ‘진본’이라면 이 문건은 8월16일 서울지검장 교체 이전, 늦어도 8월 초에는 작성됐어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문건이 검찰 인사나 수사진행상황을 지켜보고 난 이후에 작성한 조작문건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민주 한나라당 공방〓한나라당은 문건이 보도되자 “병풍 수사가 정권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라며 총공세에 나섰다.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은 “8월초 민주당 인사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문건의 시나리오대로 검찰 수사가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 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은 “우리 당에선 아무도 이런 문건을 만든 일이 없다”며 “현재로서는 정체불명의 괴문서로밖에 볼 수가 없다”고 반박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