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가장 멋지고 견고한 석조 건물로 사옥을 짓고 대규모 거래를 하는 일본 제일은행이 제물포에 있다.’
1901년 영문잡지인 ‘코리아 리뷰’ 1월호에 실린 기사 중 일부로 당시 인천에서 일본계 은행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인천지역 금융기관은 일제에 의해 생겨났다. 일본은 1883년 인천을 강제 개항한 후 경제수탈의 전위부대 역할을 담당할 은행들을 잇따라 개설했다.
인천 중구 중앙동 일대에는 고풍스러운 건축양식의 옛 일본계 은행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가장 오래된 은행 건물은 1883년 인천개항과 함께 세워진 옛 인천제일은행 인천지점. 1982년 3월 인천시 문화재 제7호로 지정됐다. 이 건물은 해방 후 조달청이 사용하다 법원이 건물을 인수해 97년까지 인천등기소로 사용했다. 건물 중앙부는 돔 형태로 르네상스 양식을 본 땄으며 설계는 니이노 미다카마사(新承孝正)가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2000년 문화재청과 인천시, 중구가 1억1000만원을 들여 천장 등을 일부 보수했지만 119년 된 건물이란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견고하다.
제일은행은 일반은행이었지만 업무 범위를 벗어나 해관세(海關稅 지금의 세관세)를 취급했다. 1902년에는 10원(圓), 5원, 1원 등 3종류의 은행권을 발행해 국내 통화의 흐름을 왜곡시키기도 했다.
1890년 10월 일본 제18은행, 1902년 7월 일본 제58은행 등 은행과 보험사들이 잇따라 문을 열면서 1900년대 초 인천에는 일본계 금융기관이 20여 개에 이르렀다.
일본 제18은행 건물은 인천시가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소유주가 반대하고 있다. 문화재청, 인천시, 중구 등은 문화재 지정이 어려울 경우 일단 문화재로 등록할 방침이다.
프랑스 풍 르네상스 양식인 제58은행(인천시 유형문화재 19호) 건물은 8000만원을 들여 내년 초부터 보수에 나선다.
청나라 관료자본과 영국 상업자본이 결합해 만든 홍콩상하이은행(HSBC)도 1897년 한국 첫 대리점을 인천에 개설했다. 러시아도 1898년 노한(露韓)은행을 설립하고 1899년 인천지점을 개설했다. 이들 2개 은행은 위치만 알려져 있고 건물은 남아있지 않다.
외국계 은행 진출에 자극 받아 상업은행의 전신인 ‘대한천일은행’이 민족자본으로 1899년 5월 인천에 지점을 세웠다. 상업은행 100년사에 따르면 ‘인천지점 이익금 중 100분의 5를 귀하의 상여금으로 특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당시 서장집 지점장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인천지역 은행들은 1910년 경술국치 후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가 서울로 이전함에 따라 단순한 금융업무만을 보게 된다.
인천 역사연구 시민단체인 ‘터진개 문화마당 황금가지’ 이종복 대표(43)는 “인천의 개항 역사를 알 수 있는 일본계 은행 건물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