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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권영준/경제불안 ‘기본’으로 풀자

입력 | 2002-10-13 18:25:00


우리나라가 아시아 몬순지역에 위치하기 때문에 매년 여름 장마와 홍수가 엄습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와 지자체는 수재(水災)에 대한 근본적 대책은 무시하고 매년 임기응변식 요행만 바라고 있다. 급기야 올해는 사상 최대의 수해와 태풍피해를 보고 말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던가. 우리 경제는 어떠한가. 최근 대내외 경제여건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우리 경제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세계 주가(株價)급락과 선진국의 경기침체, 대이라크전쟁 가능성에 더해 국내적으로는 신용 소비 부동산 거품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수출주도형의 작은 경제인 우리나라는 외부충격과 무관할 수 없는 ‘경제적 몬순지대’에 살고 있다. 즉 미국이나 일본의 경제가 재채기나 기침을 하면 우리는 폐렴을 앓는다는 자조적인 소리가 나올 정도로 외부충격에 큰 영향을 받는다.

▼정부-기업-개인 위기 합작▼

우리 경제 주체의 행태를 보면 경제의 현실을 알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오직 잿밥에만 관심이 있어 자고 나면 거짓말과 설(說), 폭로와 난타전으로 온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5년 전 외환위기 직전과 다를 바 없다. 더욱이 도덕성과 신뢰성을 상실했고 리더십이 없기 때문에 경제 사회 각 부문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조정할 능력이 전혀 없어 보인다.

다음으로 기업들의 경우 역선택으로 인해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부실기업들은 과감히 도려내고 살릴 가치가 있는 기업만 엄선해 자금을 지원했어야 했는데 정부와 채권은행들은 경험 부족과 판단착오로 손만 대다 말았다. 오히려 강력한 저금리정책으로 인해 기업구조조정은 완전히 물 건너간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들 악성기업은 생존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도덕적 해이는 물론 가격과 마케팅 등에서 시장질서를 왜곡시킴으로써 경쟁력있는 우량기업들의 기업가치를 훼손함과 동시에 투자의욕을 감퇴시키는 역할에 앞장섰다.

끝으로 개인의 경우 사상 최저의 저축률을 보이면서 과소비와 부동산투기에 앞장섰다. 정부가 가장 쉽게 손댈 수 있는 경기부양책이 바로 지난 4년간 지속해온 건설산업부양책과 금융기관들의 리스크 회피 영업전략으로 인한 개인대출의 확대 및 저금리정책 등이었다. 그러나 이는 급기야 경제성장의 질을 최악으로 떨어뜨리는 부동산 가격폭등이라는 사회적 병리현상을 유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경제현상들은 초기에 총량적 거시지표로 볼 때는 상쇄되어 별 문제가 없어 보이므로 정부관료들은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좋고 내수가 성장을 이끌고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의 미시적인 문제들은 평소에는 보이지 않다가 외부 충격이 거세지고 심리적 불안감이 가중되면 한꺼번에 노출된다. 갑자기 국가 경제위기론이 대두되고 마침내 외국인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는 위기가 오는 것이 흡사 댐이 붕괴되고 교량이 끊어지며 산사태가 난 뒤 도시 전체가 수몰되는 대참사를 불러오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대참사를 막기 위한 최우선 과제는 무엇일까. 우선 정부와 정치권은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 자신과 견해가 다른 제2진단의 목소리(Second Opinion)를 겸허하게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늘날 미국경제시스템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정부와 정치권에 대해 시장에서 보내는 신뢰성과 리더십이다. 미국 정부와 정치권이 다양한 비판의 목소리를 수용하고 잘못된 것은 신속하고 단호하게 고쳐나간다는 점이다. 이점이 우리와는 물론 일본과도 큰 차이를 보이는 미국경제 성장과 안정의 원동력이다.

▼낮은 자세로 ‘시장’ 돌아볼때▼

이제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정권 임기 말에 주5일 근무제와 기업연금 같은 논란투성이인 제도를 무리하게 밀어붙이거나 주식시장에 대한 연기금 투입이 만병통치약인 양 오도하는 데서 벗어나 지금이라도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시장원리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개혁에 머리를 맞대고 기본으로 돌아가는(Back to Basics) 정도(正道)만이 몰려오는 경제위기를 지혜롭게 해결하는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 국제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