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발표된 노벨 문학상과 평화상 수상자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인생의 황혼까지 초심(初心)을 밀고 왔다는 것이다.
특히 헝가리 작가 임레 케르테스(73)의 문학상은 ‘초심을 잃지 않은 자에 대한 축복’이라 할 만하다. 그는 1944년 아우슈비츠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인간의 인간다움이 그처럼 참혹하게 부정되고 짓밟힐 수 있음을 두 눈으로 보고 이 비극적 체험을 소설에 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5세 때였다. 그의 첫 작품 ‘무운(無運·Fateless)’이 나온 것은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1975년이었다. 그의 나이 46세 때였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가 44세 때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니까 그보다 두 살이 늦은 나이에 그는 노벨상은커녕 작가로 데뷔한 셈이었다. 노벨상을 받은 작가 중 가장 나이 먹어서 문단에 데뷔한 사람은 44세에 첫 작품 ‘파리 대왕’을 펴낸 영국 작가 윌리엄 골딩으로 알려져 있다. 케르테스는 이 기록도 뒤집었다.
그는 ‘무운’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88년 ‘대실패’, 90년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등 아우슈비츠 체험의 연장선에 선 후속편을 잇달아 내놓아 끝내 ‘무운’ 3부작을 완성하는 집념을 보였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78)의 삶도 비슷하다. 그는 퇴임 후 ‘민주주의의 전도사’ ‘분쟁 해결사’로 이름을 날렸지만 사실은 대통령 재임 시절부터 “미국은 세계평화와 인권 신장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전임자인 제럴드 포드, 후임인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등이 퇴임 후 공식활동을 접었던 것과 달리 그는 제3세계의 자유 총선과 분쟁 종식을 위해 온 몸을 던졌다. 이는 대통령직에 관계없이 인간은 평소의 신념을 실천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미국 정치학자들은 한때 그를 실패한 미 대통령의 전형으로 꼽았지만 이제 그는 미 역사상 가장 성공한 ‘전직 대통령’이 됐다.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온 한 아름다운 인생의 전형을 우리는 카터와 케르테스에게서 본다.
권기태기자 국제부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