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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14년만의 센서스' 대소동

입력 | 2002-10-13 18:29:00

한 러시아 부부가 11일 러시아 국가통계위원회가 실시하는 인구 센서스에 응하고 있다. - 그로즈니AP연합


소련 붕괴 후 처음인 러시아의 센서스(국세조사·國勢調査)가 숱한 화제를 낳고 있다.

러시아 국가통계위원회는 기초적인 인구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전 국민을 상대로 9일부터 센서스 중인데 센서스에 대한 국민의 인식 부족과 비협조로 곤란을 겪고 있는 것.

통계위는 12일 중간발표를 통해 “16일까지 계속될 센서스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겨우 8일 동안 한반도의 78배나 되는 방대한 영토에 흩어져 사는 1억4700여만명을 상대로 얼마나 정확한 조사가 이뤄질지 벌써 회의적인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는 구소련 시절인 1989년 1월의 센서스를 마지막으로 센서스를 한 차례도 하지 못했다. 예산 부족 때문이었다.

이번 센서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재벌 기업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아내는 궁여지책을 통해 실시되고 있다.

가장 큰 장애는 센서스에 대한 국민의 반감. 블라디미르 소콜린 통계위원장은 “제발 조사 요원에게 대문을 열어달라”며 호소했다. 러시아 국민은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에 자신의 신상에 대한 정보 공개를 꺼리고 있다. 거짓말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솔직히 털어놓은 내용이 훗날 악용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조사요원들에 대한 습격도 30여건 이상 일어났다. 센서스에 대한 반감과 조사용지가 들어 있는 가방에 귀중품이 있는 것으로 오해한 사람들 때문이다. 대부분 아르바이트 대학생들인 조사요원들은 “개가 가장 무섭다”고 털어놓았다.

10여년에 걸친 극심한 인구이동과 변화 때문에 겨우 찾아간 오지의 한 마을은 전 주민이 뿔뿔이 흩어져버린 채 오래 전에 폐허로 변해버린 경우도 있다.

러시아 정부는 국민의 협조를 얻기 위한 홍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조사에 응한 시민에게 간단한 선물을 주기도 하고,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선 센서스를 지지하는 관제 시위까지 갖도록 했다.

홍보에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은 첫날 푸틴 대통령 부부부터 조사에 응한 일. 다리야 아포니나라는 미모의 여대생 조사원이 모스크바 교외에 있는 노보오가레보 관저까지 방문해 18분 동안 조사를 벌였다. 푸틴 대통령은 조사 대상자의 25%에게만 던지는 보충 질문까지 충실히 대답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 조사에서 그동안 예카테리나라고 알려진 둘째딸의 이름을 카테리나라고 고쳤고,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고 있지만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는 독어뿐이라고 대답했다.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