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의 한 나이트클럽 폭발사고 발생 뒤 외국인 관광객 한명이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또 알 카에다인가.’
12일 인도네시아의 세계적인 휴양지 발리섬의 밤을 피로 물들인 잔혹한 폭발 테러의 배경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아직 어느 과격단체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지 않았고 인도네시아 경찰의 추적 대상에 올라 있는 용의자들의 가담 여부도 밝혀진 게 없다.
그러나 호주와 말레이시아 등 각국은 △미국이 테러경보를 낸 지 3일 만에 사건이 일어났고 △이슬람국 인도네시아에서도 특히 힌두교도가 많이 사는 발리를 범행장소로 택했으며 △대규모 인명살상을 노렸다는 점에서 상당한 조직력을 갖춘 이슬람 과격단체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인도네시아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 JI〓 가장 유력하게 용의선상에 떠오른 것은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원리주의 단체 제마 이슬라미아(JI)와 이 단체의 정신적 지도자로 알려진 이슬람 성직자 아부바카르 바시르(64).
JI는 폭발사건 직후 호주 정부에 의해 이번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며 알 카에다와의 연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번 사건 2주 전엔 말레이시아 경찰이 핵심 테러용의자를 붙잡으면서 “말레이시아 테러조직 ‘쿰풀란 무자헤딘 말레이시아(KMM)’와 JI가 리두안 이사무딘과 그의 이슬람 스승인 바시르 등의 지시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당국은 구체적인 물증이 없다며 인접국의 바시르 체포요청을 거절해왔다.
▽JI와 알 카에다〓미 주간지 타임은 최근 중앙정보국(CIA)의 비밀 보고서를 인용, “이사무딘의 조정을 받는 JI가 1995년 이후 알 카에다와 공조하고 있으며 바시르 역시 알 카에다와 공조하길 원했다”고 전했다.
이 보고서는 알 카에다의 동남아조직 간부인 쿠웨이트 출신 오마르 알 파루크를 붙잡아 받은 진술을 토대로 작성한 것. 알 파루크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의 미국대사관과 미국인에 대해 9·11테러 1주년에 맞춰 차량 폭탄테러를 기도했다”며 “내가 붙잡혀도 계획대로 일은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기와 차량을 동원한 수법이 이번 발리섬 사건과 비슷하다.
이 같은 보도에 대해 바시르는 “거짓말”이라고 일축하고 타임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해놓고 있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발리 이모저모
천혜의 해변 휴양지 발리의 토요일을 피로 물들인 폭발 사건의 여파는 컸다. 폭발이 일어난 사리클럽 일대는 10여채의 건물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서지고 신원을 알아보기 어렵게 된 수십 구의 시신들이 이튿날인 13일 오전까지도 수습되지 못한 채 흩어져 있어 참극의 규모를 짐작하게 했다.
○…목격자들은 사리클럽 일대에서 처음 작은 폭발이 일어났으며 수초 뒤 강력한 2차 폭발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사리클럽에는 호주인 영국인 독일인 등 주로 서방 관광객들이 어두운 조명 아래서 춤을 추거나 술을 마시고 있었다. 폭발이 일어나자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해버렸다.
폭발 직후 사리클럽의 중앙 무대에는 크게 다친 손님들이 쓰러져 있었고 생존자는 건물 밖으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많은 사람들이 불에 타거나 연기에 질식됐다. 이날 폭발로 사리클럽 일대의 블록 전체가 통째로 파괴됐으며 파편이 수백m나 날아가고, 10㎞ 떨어진 주택가 유리창까지 파괴됐다고 CNN이 전했다.
이날 수백명의 발리 관광객들은 추가 폭발을 우려해 해변에 몰려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사리클럽은 호주 서핑객들이 즐겨 찾는 쿠타해변에 위치해 있는 나이트클럽으로 길 건너편의 ‘패디 바’와 함께 젊은 외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모아온 장소이나 동양인들은 그다지 많이 찾지 않는 곳.
희생자 중에는 호주 사람들이 많았다. 사리클럽을 찾은 호주 퍼스 지역의 럭비 클럽인 킹스리클럽 선수 7명의 행방이 묘연해 폭발사건에 한꺼번에 희생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킹스리클럽은 최근 발리에서 열린 국제럭비대회 참가했으며 코치와 12명의 선수는 폭발 직후 현장을 탈출했다.
또 폭발 사건으로 부상해 발리병원에 수용된 환자들의 75%가 호주인이라고 현지 의료진이 전했다. 그 밖에 스위스 독일 스웨덴 미국 영국 이탈리아인 등이 치료중이라고 덧붙였다.
○…호주 정부는 13일 자국민 부상자 수송을 위해 발리에 군용기를 급파키로 결정. 호주 콴타스항공도 발리 현지에서 귀국을 희망하는 호주인들을 돕기 위해 13일 밤 항공기 1대를 급파했다. 뉴질랜드 외무부와 일본 외무성도 발리섬 여행을 자제하도록 당부.
○…사고 직후 외국인들이 발리국제공항에 쇄도, 외국인 관광객들의 탈출 러시가 시작됐다. 이탈리아 관광객인 시모네 테스키는 12일 밤 끔찍한 사고 현장인 쿠타 소재 외국인 전용 사리클럽에 있었다면서 “신이 날 도와 이렇게 살아있다”며 “당초 20일간 머물 생각이었는데 무서워 지금 떠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현지 여행사들은 관광객들의 출국을 위해 추가 항공편을 긴급 마련하기도 했다.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13일 대통령궁에서 긴급 각료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12일 발리와 북술라웨시주 주도 마나도에서 발생한 3건의 연쇄 폭발 사건을 강력히 규탄했다. 메가와티 대통령은 이어 밤방 유도요노 정치안보조정장관 등 각료 4명 및 통합군사령관과 함께 공군기 편으로 발리의 사고현장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