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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신당동 떡볶이촌의 변신

입력 | 2002-10-14 15:28:00

30, 40대 직장인들이 뮤직박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떡볶이를 즐기고 있다. -강병기기자


“어머, 웬 신당동 떡볶이….”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 6세 어린이 생일파티 식탁에 올려진 신당동 떡볶이는 초대받은 어린이 친구의 엄마들 차지가 돼버렸다.

“정말, 그 신당동 떡볶이예요? 내가 얼마나 자주 먹던 건데….”

“그렇다니까, 애 아빠가 포장해서 사온 거라고.”

30대 중반의 엄마들은 ‘신당동표’ 떡볶이 4인분을 게눈 감추듯 먹어버렸다.

386세대는 서울 중구 ‘신당동 떡볶이’를 통해 학창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린다.

70, 80년대 전성기를 거쳐 쇠락의 길로 들어서던 신당동 떡볶이촌이 지금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대형화와 인수합병(M&A)〓떡볶이타운도 ‘구조조정’을 한다.

한창 때 30개를 웃돌던 신당동 떡볶이 가게는 2002년 10월 현재 14개로 줄었다. 문을 닫은 업소도 있지만 M&A와 자발적인 대형화로 인해 수가 많이 감소했다. 50년 역사의 ‘마복림할머니네’와 ‘할먼네’가 옆 가게를 인수한 것은 M&A 케이스.

반면 7개의 떡볶이 가게가 합쳐 올 1월에 주식회사 형태로 다시 문을 연 ‘아이러브 신당동’은 자발적인 몸집불리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아이러브 신당동은 이곳 대부분의 떡볶이 가게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우선 내부 인테리어를 산뜻하고 밝게 꾸몄다.

신청곡을 받아 틀어주는 DJ박스를 만들고, 통기타 가수의 라이브 무대를 마련했다. 대형 멀티비전에선 인기가수의 뮤직비디오가 하루종일 나온다.

공동대표 중 한 명인 박재철 사장(40)은 “이곳의 터줏대감인 마복림할머니네 점포가 M&A에 이어 분점(아들네)까지 세우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주변 가게들이 자발적으로 합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대형화의 결과〓‘규모의 경제’가 고스란히 나타났다. 종업원은 합치기 전에 비해 절반으로 감소하고 떡과 쫄면 고추장 등 떡볶이용 재료는 30%가량 싼 값에 조달한다는 것. 그보다 훨씬 결정적인 것은 100대가량의 주차공간이 생겼다는 점.

수익측면에선 더욱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합치기 전까지 7개 가게는 적자이거나 근근이 유지하는 수준.

대형화 이후 아이러브 신당동의 월 평균 순수익(각종 비용 공제)은 2100만∼2800만원. 7명의 주주(공동사장)가 각자 월 300만∼400만원씩 챙겨간다.

맛의 표준화도 이뤄졌다. 신당동 떡볶이는 소금 고추장 춘장 등 20여개 재료가 들어가는 ‘떡볶이 소스’가 맛을 좌우한다.

문제는 배합비율에 있다. 7개 업소 사장들은 처음엔 “우리집 소스가 최고”라고 주장했다. 결국 한 집씩 소스를 만들고 맛을 본 뒤 의견을 모으는 과정을 반복해 지금의 떡볶이 소스가 탄생한 것.

LG경제연구원 이승일 연구위원은 “7개 업소의 장점만을 뽑아내 맛의 상향평준화를 이룬 셈”이라며 “비용을 적게 들여 품질을 업그레이드한 것과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추억을 판다〓DJ박스, 통기타가수 등 70, 80년대의 문화적 산물 또한 이 업소의 성공 요인이다.

“요즘엔 학창시절 친구와 함께한 추억을 더듬으려는 30, 40대 고객이 가장 많지요. 70, 80년대 떡볶이를 즐기던 학생이 이젠 어른이 돼 아이 손을 붙잡고 옵니다.”

박 사장은 80년대 신당동 최고의 DJ로서 ‘허리케인 박’이라는 예명으로 유명세를 탄 인물. 지금도 낮 시간에 직접 판을 고르고 신청곡을 받는다.

문화평론가 김지룡씨는 “딱지 떡볶이 만화 등 향수상품은 추억을 현물화해 파는 일종의 복고상품으로 386세대에 속하는 30, 40대가 주요 고객층”이라고 말한다.

그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장사는 두 번 할 수 있다고 하는데 30대 이후가 바로 두 번째 사업타이밍”이라고 했다.

▽주변 상가에 주는 영향〓그렇다고 ‘제2의 아이러브 신당동’이 나오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

아이러브 신당동은 7개의 업소가 한 건물 1층에 입주한 덕에 쉽게 뭉칠 수 있었지만 다른 소규모 떡볶이집은 대부분 건물주가 다르기 때문.

이승일 연구위원은 “업체가 난립하더라도 대형화한 상위 1, 2위 업체가 시장을 주도하고 과실을 독차지한다. 대형화의 대열에 제때 편입하지 못한 업체는 해당 산업이 성장하더라도 이익이 줄어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