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시 민통선 들판에서 독수리들이 한구구조류보호협회에서 뿌린 고기를 먹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경의선 복원으로 관심이 커진 경기 북부 민간인 통제선(민통선) 이북지역에서 ‘야생동물 포획’이 새로운 쟁점이 떠올랐다. 민통선 안에서 농작물을 경작하는 농민들은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늘어난 야생동물 때문에 생계를 위협받을 정도로 피해를 입고 있다며 포획 또는 사살을 허가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환경단체들은 민통선 내 환경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동물들로 인한 피해가 커 포획에 강하게 반대하지 못하고 있다.
▽피해 실상〓30여년간 민통선에서 농사를 지어온 경기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통일촌 백운달 이장(56)은 며칠 전 자신의 논둑에서 고라니 한 마리와 마주쳤다. 고라니가 수확을 앞둔 논으로 뛰어들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바람에 논 두마지기가 거의 쑥대밭으로 변했다.
백씨는 “최근 야생동물이 크게 늘면서 사람이 위험한 상황”이라며 “논밭의 일부가 훼손되는 것이 아니라 수확이 어려울 정도로 피해가 심하다”고 말했다.
허가를 받고 민통선 안에서 경작하는 김모씨(55)는 올 봄 모판을 돌보던 중 느닷없이 씩씩거리며 멧돼지 한 마리가 달려드는 바람에 몸을 피하기 바빴다. 어린 모는 형태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짓뭉개져 농사에 큰 차질을 빚었다.
특히 멧돼지들은 무리를 지어 이동하면서 밭고랑을 없앨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끼치고 있으며 먹지도 않으면서 농작물을 훼손하고 공격성이 강해 사람에게도 위험한 존재다.
▽주민 요구〓통일촌과 군남면 조산리 대성동, 진동면 동파리 통일촌 등 파주시 민통선 이북지역에 조성된 마을 대표들은 최근 청와대와 국방부, 환경부 등에 진정서를 보내 생계보전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호소했다.
야생동물을 포획할 수 있도록 해주거나 민통선 일대를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농작물 피해 발생시 국가에서 보상해 달라는 것.
올 들어 60여 가구에서 250㏊의 농경지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지만 실제 피해는 이보다 서너배 많다고 주민들은 주장한다.
▽환경단체 반응〓야생동물 보호와 민통선 내 환경보호를 위해 무리한 포획은 안 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농민들이 민통선 안에서 경작하는 면적을 늘리다 보니 야생동물과 마주칠 가능성도 그만큼 커졌다는 분석도 있다.
파주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주민의 생존권과 민통선의 자연환경을 함께 보호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원칙론만 말했다.
파주시는 천적이 사라진 후 고라니 노루 멧돼지 너구리 등 야생동물들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파악하면서도 군사지역이어서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한국자연정보연구원 노영대 원장(51)은 “민통선 내 정확한 야생동물 개체 수와 농민 피해실태를 조사해야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주〓이동영기자 ar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