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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이헌진/백화점의 매출 부풀리기

입력 | 2002-10-14 18:32:00


국내 주요 백화점들은 13일 가을 정기세일이 끝나자 ‘입을 맞춘 듯’ 지난해보다 하루 매출액이 14% 정도 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각 백화점 임직원조차 이 통계를 거의 믿지 않았다. 유통업계가 발표하는 매출 신장률이 그만큼 ‘부풀리기’가 많다는 뜻이다.

이번 세일은 지난해보다 기간이 하루 더 늘어났는데 그 하루가 바로 휴일이었다. 휴일은 보통 평일보다 매출이 2배 가까이 많다. 따라서 세일 하루 평균 매출액으로 지난해와 비교할 경우 똑같은 잣대를 쓰는 듯 보이지만 ‘숫자의 왜곡’이 생긴다.

좀 더 심한 사례를 보자.

대형 백화점들은 9월 매출액이 작년 같은 달보다 6∼10%가량 증가했다는 자료를 이달 초 내놓았다. 하지만 최근 산업자원부에서 공식발표한 ‘9월 대형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9월 백화점 매출은 작년 동월 대비 1.4% 줄어들어 15개월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런데도 백화점 관계자들은 “기준이 다르다”는 등의 석연치 않은 해명만 한다.

뒷이야기를 들어보면 더 기가 찬다. 실제 매출이 아니라 경쟁업체의 매출을 기준으로 발표자료를 만든다는 이야기다.

A백화점의 한 임원은 “사실 매출을 부풀리는 게 정도를 넘었다는 것은 우리도 안다”며 “하지만 정직한 회사만 바보 취급당하는 게 유통업계의 현실”이라고 귀띔했다.

다른 대형 유통업체인 B백화점 관계자는 “우리는 10%포인트 이상은 안 올린다”면서 “다른 업체는 더 심하다”고 말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 백화점은 매출증가율 0.5%를 10.5%로까지는 ‘조작’해왔다는 뜻이다. 인터넷 쇼핑몰의 매출 발표도 ‘엉터리’다. 한국전자상거래 및 통신판매협회에 신고하는 것과 언론 발표 및 증권사 애널리스트에게 제공되는 것은 20∼30%나 차이가 난다.

‘통계의 왜곡’은 단순히 해당 기업에 대한 불신을 넘어 국민경제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자칫 경제정책을 세우고 조정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수치(數値)가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달부터 공정고시제도의 도입으로 상장 및 등록 유통업체는 매출발표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 기회에 각 백화점이 잘못된 관행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는 노력을 할지 지켜볼 것이다.

이헌진기자 경제부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