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건축 불가 판정을 받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시영아파트. - 사진제공 강남구청
서울의 일선 구청장들이 시에 집단으로 반기를 들었다. 도시계획 및 주택정책 권한의 일부를 넘겨주지 않으면 ‘실력 행사’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 그동안 강남, 서초 등 재정자립도가 높아 시에 밉보여도 아쉬울 게 없는 일부 구청에서 시에 반발하는 경우는 간혹 있었지만 구청장들이 단체행동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청장들의 반란〓25개 구의 구청장들 모임인 구청장협의회는 10일 정례회의를 열고 소규모 도시계획 결정권과 재건축 안전진단 권한을 구에 이양하라고 서울시에 요구했다.
협의회 회장인 김충환(金忠環) 강동구청장은 “일정 규모 이하의 도시계획은 구청에서 입안해 직접 시 도시계획위원회에 상정하고 재건축 안전진단 역시 지역사정에 밝은 구청이 맡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구청장들은 24일 시-구청 정책회의에서 이 문제를 정식 제기한 뒤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헌법상 권한쟁의 심판을 제기할 예정이다.
이와는 별개로 강북지역 구청장들은 시가 내년 6월까지 마칠 계획인 ‘일반주거지역 종별 세분화’도 낙후지역의 개발을 가로막는 정책이라며 재고할 것을 요구했다.
▽권한이양 요구 이유〓시가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있으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고 정책 시행에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
김충환 구청장은 “몇 안되는 시 담당직원들이 현장에 나와보지도 않고 정책을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구청이 하면 몇 달에 끝낼 일을 몇 년씩 끌고 있다”고 말했다.
현실적인 이유는 구청의 힘을 키우려는 것. 한 구청 주택과 관계자는 “시와는 달리 구청의 주택과, 도시계획과는 기피 부서”라며 “권한은 없는 반면 민원은 많아 다른 부서로 옮기고 싶은 생각뿐”이라고 털어놓았다.
▽‘난개발’ 통제가 관건〓시는 구청장들에게 권한을 대폭 넘겨 주면 난개발이 우려된다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박필용(朴必容) 시 도시계획과장은 “유권자를 의식해야 하는 구청장들은 민원에 못 이겨 과도한 개발을 할 수밖에 없다”며 “각 자치구가 시에 올리는 도시계획 입안 건수도 한 달에 10여건에 불과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구청들은 ‘기우(杞憂)’라고 주장한다.
재건축 안전진단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강남구의 권기범(權奇範) 도시관리국장은 “자율로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해 최근 개포 시영아파트에 재건축 불가 판정을 내렸다”며 “구청에 맡겨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황승흠(黃承欽·법학과) 성신여대 교수는 “지방자치 정신에 비춰 권한의 일부를 이양하는 것이 옳지만 난개발을 막기 위해 철저한 사후 통제장치를 마련하고 시가 만든 도시계획 및 주택정책의 틀 안에서 재량권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