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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예종석/주5일근무 왜 서두나

입력 | 2002-10-16 18:19:00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최근에 히트한 광고의 문안이다. 제대로 쉬어 보지도 못하고 일에만 매달려온 직장인들을 크게 공감케 한 광고였다. 이제 그 광고처럼 주말이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이 가시화되고 있다.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1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어 국회의 입법절차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가 내놓은 안에 대해 당사자인 노동계와 재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계는 이미 공동투쟁본부를 구성하고 이 법안이 해당 상임위를 통과하면 총파업에 들어갈 것을 예고해 놓고 있다. 경제 5단체 또한 정부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수용불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노사는 주5일 근무제의 시행시기, 임금보전 방식, 초과근로 할증률, 탄력 근로 시간 등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노측은 경제 사정이 우리보다 못한 중국이나 미얀마 태국 인도 등도 이미 시행하고 있는 주5일 근무제를 우리가 시작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주장이고, 사측은 우리가 일본보다 휴일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어떻게 국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겠느냐고 항변한다.

양측의 주장을 경청하다 보면 논쟁의 초점은 ‘삶의 질이냐, 국가경쟁력이냐의 문제’로 좁혀진다. 노측은 이제 우리도 삶의 질을 누릴 때가 되었다는 주장이고 더 이상은 기다려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측은 지금 당장 많은 기업에서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게 되면 노동비용이 상승해 국가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을 펼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양측의 주장이 상호 배타적인 것만은 아니다. 주5일 근무제의 도입으로 삶의 질이 개선되면 근로자들은 재충전, 자기계발의 기회를 갖게 되고 그것은 결국 국가의 중장기적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주5일 근무제는 노동비용의 증가를 초래해 제품단가를 상승시키고 근무시간 축소로 생산량의 차질을 가져와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국가 정책의 성공은 타이밍의 선택과 접근방식에 크게 좌우된다. 왜 정부는 하필이면 경제 전망이 이렇게 불투명한 시기에 상당한 부작용이 예상되는 제도의 도입을 무리하게 서두는가. 경제가 어려울 때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할 경우 고용창출이나 소비진작 같은 긍정적 효과가 그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일본이나 유럽 등지의 경험에서 밝혀진 바 있다. 반대로 생산차질, 근로조건을 둘러싼 노사마찰 등의 부정적 효과는 증폭된다.

삶의 질의 향상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점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그러나 새 제도는 시행초기에 상당한 혼란과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우려가 높으므로 노사정(勞使政)은 이기심을 버리고 지혜롭게 대처해 부정적 효과는 최소화하고, 긍정적 효과는 최대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이렇듯 민감한 사안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졸속 입법에 앞장서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선거를 의식한 선심용, 또는 선거공약을 지키려 노력은 했다는 생색용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는 상당한 준비와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기업은 주5일 근무제의 본격적 도입에 대비해 생산성 제고를 위한 시간관리 강화에 힘써야 할 것이며, 새 제도의 도입으로 야기될 수 있는 노사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종업원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근무여건과 제도를 개선해나가야 할 것이다. 정부는 휴일대응체제의 준비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금융기관이나 관공서의 무인서비스 기능을 강화하고 병원이나 약국에도 휴일서비스 체제를 구축해 휴일에도 시민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여가활동을 지원하는 인프라의 확충도 시급하다.

제도는 도입됐는데 인프라가 따라주지 못한다면 그 제도는 제 구실을 못한다. 그런 점에서 일본이 1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주5일 근무제를 정착시킨 것은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예종석 한양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