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중학교 3학년인데요. 고등학교 진학을 보류하고 외국에 가서 공부할까 고민 중입니다. 과연 지금 가는 것이 좋을까요? 고등학교 후에, 대학졸업 후에 가는 것이 좋을까요? 제 친구들이 하나 둘 유학을 가네요. 녀석들은 적극적으로 꿈을 향해 달리는데 혼자 남은 제가 초라해 보입니다. 새벽 올림.”
지난달 필자의 칼럼에 대한 반응은 전에 없이 많았다. 한국은 교육비 세계 1위, 작년 유학비가 7억달러, 금년에는 그 2배 이상을 예측하고 있다고 한다. 그 만큼 조기유학, 영어교육에 대한 열기가 우리 교육계를 강타하고 있다는 증거다. 국내의 학부모, 학생 독자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등 외국의 영어 교사와 학원장들에게서도 e메일이 쏟아졌다.
▼비싼 私교육이 유학 부추겨▼
그중 ‘새벽’의 편지는 우리 모두의 고민을 담고 있기에 좀 더 깊이 짚어보고 싶었다. 새벽이는 나의 답장을 받고 적어도 패잔병 같은 실의는 극복한 듯이 보였다.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예의를 깍듯이 갖추고 맞춤법도 완벽한 글을 보내온 새벽이는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학생이었다.
과연 초·중·고등학생의 조기유학은 바람직한 것인가. 바람직하지 않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 국내 교육계는 현재 불고 있는 영어연수와 조기유학 열풍을 어떻게 잠재울 수 있는가. 국내 교육과 유학의 경우를 세 가지 중요한 요인으로 비교하되, 유학생이 가장 많은 미국을 주 대상으로 분석해보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유학비용이다. 사교육 의존도가 높다보니 의외로 국내교육과 유학이 비용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조사자료가 많다. 학교, (개인) 과외, 학원에 들어가는 비용과 교재비 등을 합치면 심할 경우 국내 교육비가 연간 4000만∼5000만원까지 들어간다고 하니 학비와 기숙사비를 합친 미국 유학비와 맞먹는다는 얘기가 된다. 이 점이 특히 유학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두 번째로 교육환경을 보면, 한마디로 유학 쪽이 유리하다고 하겠다. 한국 학생들이 꽉 짜인 학교공부와 과외, 학원생활에 시달리는 반면 미국에서는 교사와 학생의 비율이 1 대 5 내지 1 대 8에 불과해 교사의 개별적인 관심을 받아가며 학생이 개성을 키울 수 있다. 또 10여개 과목을 공부하는 대신 자기가 원하는 몇 개 과목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면 학생의 정서적 환경은 어떠한가? 이 점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유학에서 기숙사 생활을 택하는 경우 ‘나쁜 친구’를 사귀어 탈선할 가능성이 있고, 민박의 경우에는 문화와 가정환경의 차이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왕자 공주로 자라 자립성이 부족한 우리 아이들이 외국 가정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렵사리 선택한 유학생활에 치명타를 입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무리 영어발음이 좋고 전문지식이 풍부하다고 해도 가치관과 인격에 문제가 있다면, 그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가 없게 될 것은 자명하다.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유학을 떠나는 학생 자신의 의지와 동기다. 부모의 뜻에 따라 떠밀려서, 아니면 ‘남들이 가니까’ 유행처럼 유학을 선택하는 것은 금물이다. 유학을 가도 좋다고 추천할 만한 학생이라면 성적도 웬만큼 좋고 본인 스스로가 강력한 유학동기를 갖고 있어야 한다. 특히 예능이나 과학 등 한국에서 교육시설이 부족한 분야로 장래 목표를 정하는 등 개성이 뚜렷한 ‘자립형’이 성공할 비율이 높다.
▼섬에 영어천국마을 만들자▼
공부에 흥미가 적은 학생이나 ‘문제아’가 유학을 떠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들은 부모의 눈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더 큰 문제아가 될 수 있다. 숙제와 독서량이 많고 토론을 많이 하는 미국식 교육은 언어가 수월치 않은 유학생들에게 좌절감을 줄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끝으로 한국 교육계에 한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면, 민속촌처럼 남해의 작은 섬 같은 곳에 ‘영어천국마을(English Paradise Village)’을 건설하여 영어교육 환경을 외국에서 그대로 떠오고, 계절강좌를 설정하는 등의 방법을 도입해 모든 유학 희망자를 수용하도록 하면 어떨까?
홍연숙 한양대 명예교수 yshong333@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