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미 시카고주립대학 정치학과 로완 교수 - 이종승기자
20일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한 보육원. 파란 눈의 외국인이 보육원 대문에 들어서자 어린이들이 맨발로 마당으로 뛰어나가 덥석 안겼다.
“선생님! 이제 영어 알파벳 다 말할 수 있어요.”
“하이(Hi). 꽁주님들. 쫘∼알 있었어요? 뽀∼고 싶었어요.”
한국말이 아직 서툰 이 외국인은 지난달 중순부터 보육원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버나드 로완 미국 시카고주립대 정치학과 교수(38).
안식년을 맞아 한국국제교류재단 초청으로 6월 한국을 찾은 로완 교수는 매주 일요일이면 이곳을 찾아 5∼12세 여자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영어를 가르치는 장소는 보육원 안방. 2층짜리 일반 가정집을 고아원으로 쓰고 있는 탓에 흔한 책상이나 칠판도 없지만 밥상에 둘러앉은 어린이들과 로완 교수의 열정은 용광로 열기만큼 뜨거웠다.
로완 교수가 ‘A’가 적힌 낱말카드를 들어 보이며 철자를 읽자 12명의 어린이들은 목청껏 ‘에이’를 따라 외쳤다. ‘천사’ 그림을 보여주자 어린이들은 “에인절(Angel)”을 소리 높여 말했다. 한 어린이는 날갯짓을 하며 천사 모습을 해 보이기도 했다.
로완 교수는 2주 전 일요일에는 어린이들을 데리고 근처 공원으로 가 피자와 과자를 함께 먹으며 야외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요즘 그는 어린이들과 함께 성탄절에 공연할 영어 연극인 ‘아기돼지 삼형제’ 공연 준비로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그가 자원봉사에 나서게 된 것은 8월 말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외국인 안내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던 ‘코리자원봉사단’(02-542-1297, http://guidekorea.org)을 만나면서부터.
2000년 12월부터 서울과 경기 안양, 대구 등 3곳의 아동보호시설에서 국내 거주 외국인과 내국인이 참여해 영어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들은 그는 곧장 구의동 보육원으로 달려가 어린이들을 만났다.
“아이들 얼굴에서 희망과 힘, 그리고 순진무구함을 발견합니다. 아이들의 미소는 저에게 사랑과 영감을 주는 원천이지요.”
그는 12월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가장 아쉽단다.
“아이들과 헤어지는 것이 슬프지만 그때까지 계속 아이들을 만날 겁니다. 미국에서도 편지를 쓰고 한국에 다시 오면 아이들을 꼭 만날 것입니다.”
로완 교수는 어린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역경을 헤쳐갈 것으로 확신한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무궁화 같은 아이들이여!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을 함께 바라보며 그 빛을 따라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가자.”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