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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씨름판 호령하는 거인들

입력 | 2002-10-20 18:25:00



프로씨름 7년차인 김영현(26·LG투자증권). 그에게는 ‘골리앗’이라는 별명이 딱 어울린다. 2m17, 156㎏의 태산같은 덩치. ‘다윗’을 자처하는 선수들이 연달아 도전장을 내고 있지만 그를 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프로농구의 최장신인 서장훈의 키가 2m7. 그보다 10㎝나 더 큰 김영현은 한영고 시절부터 농구선수로 전향하라는 유혹을 집요하게 받았다. 그러나 이미 고교시절 아마추어 대회 6관왕에 오를 정도로 막강했던 그는 농구 코트 대신 모래판을 지켰고 마침내 최고의 거인 장사로 우뚝 섰다. 벌써 지역장사 타이틀만 13번째다.

씨름판에는 거인 장사 계보가 있다. 프로씨름이 막오르기 훨씬 전부터 이어져온 계보다. 키가 겨우 어깨에 닿는 선수들의 기술에 맥없이 넘어가 관중들의 웃음을 사는 일도 있지만 이들 거인 장사는 모래판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다.

초대 거인 장사로는 1950년대 말과 60년대 초의 김용주가 꼽힌다. 그의 키는 2m14. 전 국민을 통틀어도 2m대가 별로 없었던 당시 김용주를 보는 것만으로도 큰 화젯거리였다고 한다. 울산이 고향이었던 김용주는 1960년대 국내 언론사가 주최한 장사씨름대회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당시 씨름 선수들이라고 해야 1m80 이하가 대부분이어서 김용주가 샅바를 잡고 일어서면 산같은 체격에 눌려 상대 선수가 그냥 주저앉는 경우가 허다했다. 김용주는 후에 프로레슬러가 되기 위해 일본의 역도산을 찾아갔으나 허리부상으로 은퇴를 했다.

김용주를 이은 2대 거인 장사는 박범조. 2m4, 125㎏의 그는 1970년대 중반까지 모래판에서 강자로 군림했다. 경북 의성 출신인 박범조는 도중에 씨름판을 떠나 육상과 레슬링을 전전하다 은퇴했다.

거인 장사 계보를 활짝 꽃피운 선수는 이봉걸. 1980년대 ‘인간 기중기’라는 별명과 함께 3대 거인 장사로 등장한 그는 프로씨름이 출범하면서 ‘씨름 황제’ 이만기,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등과 ‘3인방’을 이루며 맹활약했다. 2m5, 135㎏인 그의 경기는 이겨도, 져도 모두 화제였다. 이봉걸은 1990년 7월 부상으로 은퇴할 때까지 통산 226전 187승 78패의 전적을 남겼다.

이봉걸을 이은 4대 거인 장사가 바로 김영현. 그가 선배 거인 장사에 비해 뛰어난 점은 다양한 기술까지 갖췄다는 점. 특히 허리기술의 하나인 밀어치기는 주특기로 꼽힌다.

상대의 허리샅바와 다리샅바를 바짝 당기며 긴 상체를 상대의 몸에 올려놓으면 웬만한 장사들은 제풀에 주저앉기 일쑤다. 여기에 잡채기와 들배지기 기술까지 구사하고 있어 사실상 무적. 그러기에 김영현이 무서워하는 적은 선수가 아니라 고질적인 무릎 부상 정도.

그런 김영현이 요즘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바로 5대 거인 장사가 등장했다는 소식 때문이다. 아마추어 모래판을 휘젓고 있는 최홍만(22·동아대3년)이 그 주인공. 2m18, 160㎏인 최홍만은 체격으로는 김영현을 오히려 압도한다. 제주 한림 출신인 최홍만은 부산 경원고 1학년 때 뒤늦게 샅바를 잡았으나 아마추어 무대에서는 천하무적. 그가 프로씨름에 등장하는 내년 겨울 골리앗 대 골리앗의 흥미진진한 대결이 벌어지게 된다.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