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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지주회사 설립 붐…전문화-투명성 '쑥쑥'

입력 | 2002-10-21 18:08:00



식품업체 풀무원은 내년 3월경 지주(持株)회사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두부 나물 등 식료품 매출이 전체의 80%를 차지하는 풀무원이 지주회사 청사진을 내놓은 이유는 뭘까.

해답은 2000년 풀무원의 주가그래프에서 찾을 수 있다. 2000년 3월 11일 풀무원은 “생명공학산업에 진출한다”고 공시한 뒤 주가가 3만500원에서 5거래일 만에 2만650원으로 32%나 폭락했다. 같은 기간 종합주가지수는 1포인트 올라 비슷한 수준이었다. ‘식품업에나 주력하지 웬 문어발 확장이냐’는 질책이었던 것.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풀무원은 지주회사 카드를 내놓았다. 회사를 분할해 사업다각화는 지주회사가 전념하고 기존식품업은 자회사 신(新)풀무원에 넘기면 투자와 사업을 분리해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에게도 불리할 게 없다. 성장성(지주회사)과 안정성(자회사)으로 선택의 범위가 넓어진다.

풀무원뿐 아니라 최근 지주회사로의 개편을 모색하는 기업이 눈에 띄게 늘었다. 99년 4월 말 허용된 이후 9월 말까지 설립된 지주회사는 16개사.

▽도입 배경은 구조조정〓지주회사는 자회사를 여럿 거느린 회사다. 지주회사의 지분만 가지면 자회사도 모두 지배할 수 있어 외환위기 이전에는 문어발 확장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자 사정이 달라졌다.

공정거래위원회 박인규 사무관은 “국내 지주회사 제도는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돕기 위해 도입됐다”고 말했다. 여기에 지주회사로 개편되면 우회출자 등을 막을 수 있어 기업지배구조가 투명해진다는 장점도 있다.

금융지주회사 역시 마찬가지.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금융기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대형화를 유도하려고 했지만 조직원들의 반발로 합병은 여의치 않았다. 그 대안으로 감원(減員)이 적어 조직원의 반발이 덜한 지주회사가 대안(代案)으로 채택됐다.

▽지주회사, 어떤 장점이 있기에〓최근 일반지주회사를 설립하는 가장 큰 목적은 투자와 사업의 분리다. 모회사(지주회사)는 투자에 전념하고 자회사는 사업에 몰두하면 각각의 성과로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

시장이나 투자자들이 사업다각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지주회사 설립을 부추기고 있다. 리캐피탈 이남우 사장은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려는 조짐이 보이면 어김없이 주가가 떨어지기 때문에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업부문을 자회사로 나누면 전문화에도 도움이 된다. 동원그룹은 최근 사업을 금융과 식품으로 나누기 위해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증권 캐피털 창투 등이 그룹 내에 산재돼 있을 때보다 지주회사로 묶으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세제혜택도 무시할 수 없다. 일반회사가 대주주에 배당하면 40%의 세금을 부과하지만 자회사가 지주회사에 하는 배당엔 세금을 감면해준다. 여기에 자회사들의 수익까지 합해 세금을 부과하는 연결납세제가 2004년 도입되면 혜택은 더 커진다.

금융지주회사의 가장 큰 장점은 ‘종합자산관리’에 유리할 뿐 아니라 일반회사에는 금지된 ‘자회사간 고객정보 공유’가 허용된다는 것.

신한지주 최방길 상무는 “종합금융서비스를 위해서는 고객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지주회사가 유리하다”고 말했다.

▽옥석(玉石)가리기는 이제부터〓현재 시장은 지주회사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발표한 동원산업은 이틀 연속 상한가를 나타냈다.

그러나 무분별한 지주회사 개편에 따른 부작용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남우 사장은 “지주회사를 만드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으면 오히려 편법상속이나 적은 비용으로 그룹을 지배하려는 것으로 오해받는다”고 지적했다.

알맹이는 자회사로 독립하고 지주회사에는 껍데기만 남는 경우도 많다. 이때는 자회사가 지주회사보다 시가총액이 월등히 많기 때문에 지주회사 주식을 소유하는 게 비용이 적게 든다.

금융지주회사의 겸업화 효과는 미지수다. 현대증권 조병문 애널리스트는 “신한지주는 굿모닝신한증권을 인수했지만 아직도 지주회사 수익의 90%는 은행에 의존하고 있다”며 “포장은 달라졌어도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