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리건축전에 출품된 김영준의 ‘파주출판단지 공동주거 계획’ 드로잉. 제8회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출품작이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동아일보와 한국예술종합학교가 협력해 제작하는 ‘OUTLOOK’면은 예술의 전문화 및 생활화를 지향하면서 아울러 냉정한 비평정신을 되살리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OUTLOOK’은 ‘한국 언론사에 새 장을 열고 한국 예술사에도 새로운 역사를 쓰자’는 취지로 7월부터 기획을 시작해 수차례 기획회의와 실무준비를 거쳐 탄생했습니다. 김윤철(연극비평) 허영한(음악비평) 김채현(무용비평) 원일(전통음악) 김소영(영화비평) 안규철(미술창작,조각) 강태희(미술비평) 김봉렬 우동선 교수(건축비평) 등 쟁쟁한 전문가들이 지면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합니다. 편집장을 맡은 김윤철 교수는 “문화향수를 일상화, 생활화하는 일종의 문화운동으로 생각한다”며 강한 의욕을 보였습니다.》
▼´헤이리건축전-승효상展´, 건축, 그 집합의 美 ▼
건축도 작품 전시회가 가능할까? 미술관을 찾는 이유는 복제된 책자에서는 불가능한, 전시된 진품만의 아우라를 느끼기 위해서다. 그러나 건축 전시회에 보이는 것은 진품이 아니라 건축물을 축소한 모형이나 영상, 그리고 기호화된 도면뿐이다. 진품은 전시장 바깥의 거리나 자연 속에 떨어져 있으며 재현물만이 전시장을 지킬 뿐이다. 판매할 진품도, 판매를 통한 이득도 기대할 수 없는 건축전이란 막대한 전시비용만 소요되는 소모적인 이벤트일 뿐이어서 미술관측도, 건축가측도 외면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2002년 가을은 건축 전시회의 계절이다. 건축가 승효상전(국립현대미술관·8.28∼10.27)과 헤이리 건축전(성곡미술관·9.10∼10.27)은 그 규모뿐 아니라 내용과 형식면에서도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헤이리 건축전은 파주 법흥리 통일동산 일대에 계획되고 있는 ‘헤이리 문화예술촌’의 전체적인 마스터플랜과 1차적으로 계획된 40여개의 설계작품들을 담고 있다. 김종규 김준성 등 주로 30, 40대 소장 건축가 30여명이 참여하여 차세대 국내 건축계의 활력과 의욕을 예견케 한다.
현대미술관측은 건축가로서는 처음으로 승효상을 ‘2001년 올해의 작가’로 선정했다. 그는이론적 토대가 탄탄한 건축가로서 그의 작품뿐 아니라 건축적 이론들이 아시아권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도시공간으로 설정해 16개의 블록으로 나누고 각 블록에 자신의 대표작 한 작품씩을 전시하고 있다.
헤이리에 전시된 40여개의 작품들이 하나의 마스터플랜을 구축하고 있다면, 승효상전의 16개 프로젝트는 한 건축가의 생각이 전개되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집단과 개인이라는 차이와 같이, 헤이리전은 수십개의 이질적인 작품들을 한 공간으로 통합하고, 승효상전은 같은 작가의 프로젝트들을 16개의 공간으로 나누고 있는 전시방법의 비교도 흥미롭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메시지들이다.
이제 건축은 건물이라는 좁고 폐쇄적인 경계를 넘어 도시 또는 자연환경과 강력한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승효상은 웰콤시티에서 잘 표현하듯이 건축물을 도시적 경관을 수용하고 만드는 그릇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헤이리에서는 전 마을 지표면의 모양과 패턴을 디자인하여 건축적 하부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건물들이 올라설 지형의 구조이며 건물들의 집합적 경관이다. 하나하나 건물의 형태나 아름다움은 더 이상 윤리적 규범은 물론이고 미학적 가치도 갖지 못한다.
승효상 전시회는 ‘도시의 여백(Urban Void)’을 주제로 걸고 있다. 도시의 주인은 멋진 건물들이 아니라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남겨진 여백들-도로와 광장, 빈터, 공허한 계단들이다. 따라서 건물 설계를 넘어서 도시 전체의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 건축가의 임무임을 상기시킨다. 헤이리에서는 이처럼 확장된 건축의 정의를 ‘건축적 경관(Landscape)’으로 구체화한다. 하나의 뛰어난 건물은 그다지 큰 의미를 갖지 못하며 오히려 건축물은 도시의 풍경을 위해 겸손히 봉사해야 한다. 마을 전체의 지면을 세부적으로 디자인하여 그 위에 올라갈 건물들의 규모와 형태, 재료들을 미리 제안하고 있다. 도시와 건축의 영역을 허물고 통합적인 설계과정을 도입한 것이다.
거대한 설치미술 전시회를 보는 것같이 전시장 전체의 독특한 구성도 뛰어나고 전시된 작품 하나하나도 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건축의 영역을 경관과 도시로 확장하고 건축의 범주를 작품과 예술로 전환시키려는 획기적인 시도일 것이다.
김봉렬 미술원 건축과 교수 brkim@knua.ac.kr
▼바짝 다가온 女감독시대 ‘여성영화’의 틀이 확장된다▼
여성을 등장시키지 않으면서도 핵무기 경쟁의 광기 속에 희생당하는 여성을 암시한 영화‘K-19’./동아일보 자료사진
사람들의 예언처럼 2000년대는 여성의 시대가 될까? 적어도 영화계에서는 그러한 징후가 있다. 지난해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 임순례의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미연의 ‘버스 정류장’에 이어, 올해는 이정향의 ‘집으로’가 개봉됐다. 변영주의 ‘밀애’, 박찬옥의 ‘질투는 나의 힘’도 곧 관객을 만난다. 올해 ‘인디 다큐상’을 받은 독립 영화 ‘평범하기’를 연출한 최현정 역시 여성 감독이다.
이 중 변영주는 ‘낮은 목소리’ 등 일본군위안부 3부작을 통해 영화로 쓰는 여성사 첫 장을 연 감독. 그래서 그가 작가 전경린의 도발적 연애 소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을 각색한 ‘밀애’를 만든다고 할 때 사람들은 고개를 살짝 젓기도 했다. 왜 연애 이야기인가?
여기서 이야기를 잠깐 돌려보자. 최근 상영된 ‘K-19’의 감독은 캐슬린 비글로다. 그녀는 멜로나 가족 영화 등 소위 여성 친화적 장르를 만든 적이 한번도 없다.
‘죽음의 키스’는 드라큘라가 등장하는 공포 영화이며 ‘블루 스틸’은 액션 영화다. ‘K-19’역시 20여대의 군함을 동원해 제작한 대규모 재앙 영화다. 그러나 ‘피아노’를 만든 제인 캠피온이 가장 좋아하는 여성 감독이 캐슬린 비글로라고 할 만큼, 그의 작품은 늘 우리를 흥분케 한다. ‘남성의 영토’로 알려진 액션 장르 속에서 남성성과 권력의 치명적이고 재앙적인 결합을 간파해내고 비판하기 때문이다.
‘K-19’도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는 냉전 시대, 소련의 핵무기에 대한 광기를 미국 쪽 시각으로 다루는 듯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불현듯 이 광란이 미국과 소련 양쪽에 해당된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영화 초반, 미국은 소련의 10배에 해당하는 핵을 가지고 있었다는 자막이 나오기 때문이다. 거기서 조금 더 나가면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미국에 대한 알레고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영화에는 여성들이 주연이나 조연급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K-19이라는 핵 잠수함의 별명은 ‘위도 메이커(과부 제조기)’다. ‘K-19’은 여성을 등장시키지 않으면서도 핵무기 경쟁의 광기 속에 그림자로 남아 희생당하는 여자들을 제목으로 암시하고 있다.
여성 감독이 펼쳐 보이는 스펙트럼은 이제 넓고 깊다. 변영주는 일본군위안부의 강제 성 노동에 관한 기록을 거쳐 이제 ‘밀애’에서 불륜이라는 통속 서사를 통과하며 여성주의적 섹슈얼리티를 대담하게 보여주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근심이 있다. 지난해 ‘고양이를 부탁해’가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에 밀려 막을 내린 일이 있다. 여성 감독의 영화가 증가하는 만큼 여성 관객들도 부지런히 극장으로 나서야 한다. 2000년대를 새로운 시대로 만들기 위한 여성의 문화 향수권은 바로 그 발걸음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아니, 여성 영화와 함께 뛰어야 한다. 질주해야 한다. 굳세어라 금순아?굳세어라 여성 관객들이여!
김소영 영상원 영상학과 교수 soha8@knua.ac.kr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 연주회´, 바로크 앙상블 완벽함의 떨림▼
15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의 내한 연주회는 바로크음악의 정상급 연주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전국 순회연주회에 따른 피곤 때문인지 처음에는 음반으로 듣던 이 악단의 맛이 다소 떨어졌지만 이후 카운터테너 악셀 쾰러와의 무대는 바로크음악 전문 연주단체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 마디로 이들은 바로크음악을 완전히 몸에 익힌 연주자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크음악에서 리듬 해석과 꾸밈음 처리, 템포와 강약의 변화는 흔히 듣는 고전주의 시대의 음악과 다르다. 이 악단에 옛 음악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이었다. 마치 1720∼30년경 독일의 궁정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이들의 연주는 살아 있었다. 앙상블은 완벽에 가까웠고 특히 오보에 연주자 두 명과 바이올린 연주자 두 명이 같은 선율을 빠르게 연주할 때에는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날의 레퍼토리는 동시대 작곡가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의 곡목으로 꾸며졌다. 바흐와 텔레만의 기악 작품을 악단이 연주하면서 중간중간 쾰러가 노래한 헨델의 아리아들이 삽입되었다. 헨델의 ‘서곡’과 텔레만의 ‘신포니아 멜로디카’와 ‘협주곡 D 장조’는 나에게도 낯선 작품이었다. 생전에 바흐보다 이름을 날린 텔레만은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우리에게 알려진 곡은 극소수이다. 생각만큼 강렬한 인상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텔레만이 바흐보다 더 진보적인 작곡가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헨델 오페라의 전문가로 알려진 악셀 쾰러가 궁금했다. 특별한 발성을 통해 남성이 여성 알토의 음역을 노래하는 카운터테너는 영국인들의 전유물처럼 알려지기도 했지만 90년대 들어 독일도 뛰어난 카운터테너를 배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쾰러는 정상급은 아니었지만 제한된 레퍼토리 안에서는 충분한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성악가라는 판단이 들었다. 이날 연주회에서는 헨델의 오페라 중에서 그 당시에는 알토 카스트라토가 노래했을 역의 아리아들을 불렀다. 전체적으로 음량이 부족했고 특히 저음에서는 카운터테너의 발성이 가끔씩 흔들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높은 음역과 헨델 아리아의 매력 중에 하나인 콜로라투라(빠르고 기교적인 노래) 연주에서는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었다.
이번 연주회의 한 의미는 국내에서도 바로크음악 전문 연주 단체가 나올 만한 분위기가 성숙되어 있음을 확인했다는 데에 있다. 음악당을 가득 메운 청중, 결코 쉽지 않은 음악에 대한 진지한 태도는 즐거운 광경이었다. 제한된 레퍼토리 속에 안주하며 포화 상태를 넘어선 우리 음악계에 바로크 전문 연주가들이 많이 나와 음악계가 이 가을처럼 풍요롭고 깊어지기를 기대한다.
허영한 음악원 음악학과 교수 yhhur@knu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