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마르티네스가 5회초 2사 상황에서 만루홈런을 터뜨린 뒤 오른쪽 집게손가락을 하늘로 치켜올리는 독특한 홈런 세리머니로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연합
‘그라운드의 여우’로 불리는 현대 김재박 감독도 살얼음 추위에 얼어붙기라도 한 듯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2-2로 동점을 내준 가운데 맞은 5회초 1사 만루의 위기. 선발 김수경은 1회를 삼자범퇴시켰지만 이후 매회 안타를 맞았고 5회에는 선두 조인성에게 안타, 1사후 유지현에게 볼넷, 이종열에게 몸에 맞는 공을 잇달아 내줘 초속 3m 이상의 강풍만큼이나 흔들리고 있었다.
투수 교체를 고려해야 할 상황. 그러나 LG의 다음 타자 이병규는 제 아무리 최고타자라도 정규시즌에서 김수경에게 12타수 2안타로 부진했던 터. 게다가 5회를 채우지 않은 채 에이스를 강판시키는 것도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결국 신철인과 이상열이 몸을 풀고 있는 불펜을 연방 훔쳐보던 김 감독은 김수경의 어깨에 팀의 운명을 맡기는 모험을 감행했다.
하지만 김 감독의 이 판단 하나가 결과적으로 승부를 좌우한 결정적인 실책이 될 줄이야. LG는 이병규가 데이터대로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2사 후 마르티네스가 볼카운트 2스트라이크 2볼에서 김수경의 한가운데로 몰린 실투성 직구를 놓치지 않고 좌중간 담을 훌쩍 넘기는 115m짜리 만루홈런으로 연결시켰고 여기서 승부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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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시즌 4위 LG가 21일 수원 1차전에서 포스트시즌 사상 6번째인 마르티네스의 만루홈런에 힘입어 3위 현대에 6-3으로 역전승을 거두고 3전2선승제의 준플레이오프에서 첫 판을 승리로 장식했다.
따뜻한 중남미의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이지만 1997년과 2000년 캐나다 캘거리의 트리플A에서 뛰어 추위에는 강하다는 게 마르티네스의 경기 후 소감.
타격에 마르티네스와 0-2로 뒤진 2회 동점 적시타를 터뜨린 조인성이 있었다면 마운드에선 3년 전 현대에서 트레이드돼 온 최원호의 선발 역투가 빛났다.
최원호는 1회 볼넷 2개로 내준 2사 1, 2루의 위기에서 심정수에게 빗맞은 우익선상 2루타를 허용, 2실점하긴 했지만 이후 탈삼진 10개를 솎아내며 8회 2사후 물러날 때까지 3안타 3실점이란 생애 최고의 역투로 친정팀 현대의 강타선을 막아냈다.
3점차의 리드를 안은 LG는 이후 마무리 이상훈이 남은 4타자를 탈삼진 1개를 포함해 범타로 처리하며 승리를 확인했다.
수원〓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양팀 감독의 말
▽LG 김성근 감독〓배터리가 승리의 주역이었다. 포수 조인성은 팀이 0-2로 뒤진 2회 동점타를 때려 분위기를 되살렸고 올 시즌 들어 최고의 투수 리드를 보였다. 투수 최원호도 1회 불안했지만 2회부터 안정을 되찾으며 기대 이상의 뛰어난 제구력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2차전에서도 선발 김민기가 어느 정도만 버텨주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
▽현대 김재박 감독〓LG 선발 최원호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한 게 패인이다. 우리 선수들이 최원호의 볼을 너무 성급하게 공략했고 스윙이 컸다. LG 마르티네스의 만루홈런은 제대로 친 것이 아니라 바람의 영향을 받은 행운의 홈런이었다. 2차전에서는 미흡한 부분을 좀더 보완해 총력전으로 나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