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영씨와 딸 지후. 박씨는 지후를 키운 경험과 상담과 진료를 통해 얻은 ‘일하는 엄마’의 노하우를 책으로 펴냈다./사진제공 시공사
광주 밝은마음 소아청소년 정신건강 클리닉 박순영 원장(37)은 일과 육아사이에서 고민하던 ‘일하는’ 엄마다. 사회에서 정한 ‘좋은 엄마상’에 괴로워하고 자신이 받은 헌신적 엄마역할에 갈등했다. 대학병원 정형외과 의사인 남편(39)마저 “그렇게까지 힘들면 그만두고 그냥 좀 쉬어”라고 말했다. ‘일을 그만 두는 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인가.’
박씨는 1992년 결혼한 뒤 1년 쉬었다. 그러나 쉰 것도 아니었다. 집에 있기 답답해 병원 응급실 주간당직을 자임했다. 지후(초등 4학년)를 낳고 2개월만에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다. 이 시절 일주일 내내 당직하다 이틀 집에 들어갔다. 집에 있기 답답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육아 대안이 없어 직장을 그만두는 ‘육아 U턴 현상’이 이해가 갔다.
“언젠가 아이를 키울 대안이 없어 일을 그만둔 엄마를 상담했습니다. 그 엄마 말이 ‘하루종일 아이와 씨름하다보면 짜증만 나고 도대체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든다. 꼭 아이들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진 것 같고 답답하고 우울해져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분풀이하고 그 다음에는 또다시 자책감에 시달린다’는 거예요.”
박씨가 선택한 방법은 일과 육아의 분리. 일이 끝난 뒤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와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물론 대기업에 다니는 일반 직장인일 경우 짧은 시간이라도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어렵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이라도 최선을 다해 애를 보라는 것이 박씨가 주는 조언.
아이가 어릴 경우 그렇다쳐도 일하는 엄마가 두 번째 갈등을 느끼는 때는 아이의 성적이 문제가 될 즈음. 그는 지후에게 공부에 대해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큼 시키고 있다. 방과후 시간을 계획해 부족한 과목을 학습지로 보충하게 하는 정도.
지후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아니라고. 박씨는 “공부는 시킨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학습에 대한 흥미가 중요하다”면서도 “엄마들을 상담하다 보면 내가 너무 느긋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고백했다. 중학교에 들어가 석차가 형편없이 나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박씨는 “그러나 결론은 아이에게 공부를 많이 시킨다고 되는 것은 아니며 공부에 흥미를 가져야 꾸준한 학습이 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씨는 현재 미국 유학을 준비중이다. 개업상황에서 유학을 결심한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삶에서 ‘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 역시 박씨가 일과 양육 사이에서 선택한 방법은 아니었을까. 박씨는 “현명한 엄마라면 일과 양육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로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일을 하면서도 엄마역할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강조했다.
그래도 고민스럽다면? 박씨는 “가장 중요한 선택기준은 엄마 자신”이라며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순위를 매겨본 뒤 이것을 가장 잘 이룰 수 있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아이, 가족, 경제적 안정, 자아실현, 일하는 즐거움, 생활의 여유 중에서.
박씨는 일과 육아 사이에서 갈등하는 많은 엄마들을 위해 이같은 내용을 담은 ‘일하는 엄마 행복한 아이’(시공사)를 최근 펴냈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