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네바에서 18∼21일 열린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6차 협상이 최종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함으로써 일단 결렬됐다.
두 나라는 막판 걸림돌로 떠오른 금융 및 서비스분야에 관해 24일까지 e메일을 통해 최종의견을 조율하기로 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양국 모두 기존 입장을 철회할 가능성이 낮아 칠레와의 FTA 협상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물론 이번에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책임을 한국측에만 돌릴 수는 없다. 협상 실패의 직접적 원인은 칠레가 막바지에 금융 및 서비스분야를 제외하자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그동안 통상협상 실패 때마다 자주 지적돼온 관련부처간 ‘손발 안 맞기’ 등 난맥상을 이번에도 드러냈다.
▽‘협상타결’에만 집착한 외교통상부〓외교부는 제네바로 떠나기 전 “이번 회담에서 가서명한다”고 밝혀 조바심을 드러냈다. 또 협상이 끝나지도 않은 20일에는 “핵심쟁점에 모두 합의한 만큼 내일 새벽이면 가서명이 이뤄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협상 과정에서 미리 ‘카드’를 내보여 협상력을 떨어뜨린 이런 태도는 칠레가 ‘금융분야 제외’를 역제안하고 “받아들일 수 없으면 협상을 깨도 좋다”며 고압적 자세를 취한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또 “사과와 배라는 큰 걸림돌이 없어진 만큼 ‘사소한 것’만 남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금융’이 칠레는 물론 재정경제부에서도 협상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사안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모른 채 협상에 나섰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칠레가 막바지에 금융분야를 들고 나온 것에 대해 칠레의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에 말려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과거 농업관련 협상 때도 일부 국가는 진짜 관심사는 숨겨둔 채 다른 이슈로 ‘벼랑끝 협상’을 하다가 양보하는 척하면서 막판에 실리를 챙기는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일부 경제부처에서는 “외교부가 국가 실익을 챙기기보다 ‘서명하고 사진 찍는 일’에 집착한다”며 불신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뒷짐지다 뒤늦게 뛰어든 재경부〓협상 대표를 맡지 않았지만 재경부의 자세에도 문제점이 많다.
재경부가 막판에 칠레의 금융 및 서비스 분야 개방에 완강한 태도를 취한 것은 앞으로 다른 나라와의 FTA 협상 때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꼭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재경부 당국자는 “솔직히 칠레의 금융시장이 문제가 아니라 중국 등 다른 나라와의 FTA 협상을 위해서도 금융부문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재경부는 지금까지 외교부에 대해 ‘금융분야의 중요성’을 한번도 공식 제기한 적이 없다. 외교부 당국자는 6차 협상이 실패한 뒤 “그렇게 중요한 사안이라면 재경부가 왜 4년간의 협상기간에 입을 다물고 있었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재경부는 또 “금융부문은 협정발효 후 나중에 다시 논의하자는 선까지 양보했는데도 칠레가 거부할 줄은 몰랐다”고 말해 상대방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음을 드러냈다. 심지어 이번에 칠레가 협상항목에서 빼자고 제안한 ‘외국인투자촉진법(DL600)’과 관련해서는 재경부조차 DL600이 뭔지 모르고 있었다.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천광암기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