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에서 적으로’.
이종범(32·기아)과 이상훈(31·LG). 90년대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했던 당대 최고의 타자와 투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맞붙게 됐다. 26일 광주구장에서 시작되는 기아-LG의 플레이오프전이 바로 그 무대.
독특한 개성과 카리스마로 수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두 명의 슈퍼스타는 굴곡 많았던 인생까지 빼닮았다.
빠른 발과 강한 어깨, 날카로운 타격 등 공수주의 3박자를 갖추며 ‘바람의 아들’로 불린 이종범은 93년부터 97년까지 해태(현 기아)에서 5년간 뛰며 세차례나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비록 5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가 국내 프로야구에 남긴 족적은 뚜FUT했다. 94년엔 타율 0.393으로 프로 원년 백인천(당시 MBC)의 타율 0.412 이후 가장 4할에 근접한 타격솜씨를 보여줬고 94년엔 지금도 깨지지 않는 시즌 196안타를 때려냈다.
98년부터는 일본 프로야구의 주니치 드래건스로 진출, ‘이종범 돌풍’을 일으켰으나 시즌중 당한 팔꿈치 부상 이후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한 채 3년 7개월여만에 지난해 8월 국내로 복귀했다.
고려대 시절 14타자 연속 탈삼진기록을 세워 주목을 받았던 이상훈 역시 93년 프로에 입문한뒤 화려한 피칭을 했다. 2년 연속(94,95년) 다승왕을 차지했고 95년엔 20승고지를 밟았다. 마무리 투수로 변신한 뒤 97년엔 최다세이브포인트(47) 기록까지 수립. 이후 4년간 일본과 미국프로야구를 두루 경험한 이상훈은 올해 국내무대로 컴백했다.
프로 동기생인 이종범과 이상훈은 98년부터 2년간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함께 뛰며 낯선 이국땅에서 서로 외로움을 달래주던 막역한 친구사이다. 또 99년엔 투타에서 활약하며 팀을 센트럴리그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포스트시즌에서 맞붙는 두 스타의 대결이 관심을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기아나 LG는 이 자리까지 올라오지도 못했다.
이종범과 이상훈이 국내 포스트시즌에서 마지막 대결을 펼친 것은 일본으로 진출하기 전해인 97년 한국시리즈 3차전. 이종범은 1-1 동점에서 7회 등판한 이상훈을 상대로 결승 2점홈런을 날렸다. 이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한 이종범은 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뽑히며 국내 고별무대의 대미를 장식했었다.
하지만 올 정규시즌 성적을 놓고 보면 이상훈이 앞선다. 이상훈은 이종범과 5차례 만나 플라이 아웃 3개, 삼진 1개, 고의볼넷 1개로 안타를 맞지 않았다.
이상훈은 주위의 관심이 부담스러운 듯 “종범이와의 만남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내가 상대해야할 많은 타자중의 한명일뿐”이라며 “야구는 1명이 하는 게 아니다”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