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숙 총장
서울 용산구 청파동 숙명여대 정문을 들어서면 본관 앞의 커다란 전광판이 눈에 들어온다. 학교를 대내외에 홍보하고 생동감 넘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2000년 국내 대학 처음으로 도입한 전광판이다.
졸업생으로 학교 교직원인 최성희씨(32)는 “캠퍼스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1995년까지만 해도 본관 학생관 약대 이과대 등 건물이 7, 8개 동밖에 안됐지만 그후 7년 동안 11개 건물이 새로 지어졌고 4개 동이 증축됐다. 학교를 둘로 나누던 도로를 사들여 박물관과 잔디밭 조성공사가 한창이다.
1906년 대한제국 황실이 세운 이래 조용하기만 하던 숙명여대가 최근 경쾌한 발진음을 내며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모습이다. 진짜 변한 것은 외형이 아니라 속내다.
1998년 국내 대학 처음으로 무선랜 구축, 2000년 국내 최초 사이버대학원 설립, 1999∼2001년 3년 연속 국가고객만족도(NCSI) 1위 대학. 이밖에도 프랑스 요리학교 코르동 블뢰 유치, 영어교사 교육프로그램인 테솔(TESOL) 강좌 개설, 대학행정아카데미 개최 등 수많은 ‘최초’와 ‘1등’을 기록중이다.
▽변화의 선봉에 선 대학〓1997년 숙명여대는 행정개혁을 시작했다. 300여명의 직원들은 자신이 하는 모든 업무를 매뉴얼화하고 모든 문서를 사무과정혁신(BPR)에 맞춰 새로 정리했다.
황영식 행정개혁팀장은 “지금 생각해도 엄청난 양의 일을 했다”면서 “변화에 대한 저항도 많았지만 외환위기 직후 흉흉하던 시절이라 참고 견뎠다”며 웃었다. 지금은 숙명여대의 행정개혁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대학이 줄을 섰고 이달 초에도 52개 대학에서 총장을 포함해 314명의 대학관계자들이 교육을 받고 갔다.
생산성이 높아졌을까? 황 팀장은 “직원이 늘지는 않았지만 서비스의 질이 대단히 높아졌다”고 말했다. 학생이 사무처에 전화를 걸어 설사 다른 부서의 업무내용을 묻더라도 사무처 직원이 끝까지 알아내 학생에게 가르쳐주는 ‘원스톱(One-Stop) 서비스’가 이뤄진다. 예전 같으면 같은 부서에서도 옆 사람이 하는 일을 몰랐었다.
직원들의 노력은 복지와 승진, 인센티브로 보상된다. 300여명 가운데 매년 50명에게 해외여행 포상이 주어지고 세계 정세 강의부터 전산교육 영어교육 등 다양한 교육기회가 주어진다.
▽동양의 미덕을 접목한 지식경영〓변화는 이경숙 총장의 ‘지식경영’에 대한 의지에서 비롯됐다. 이 총장은 1994년 취임했을 때 처음 받은 ‘선물’이 7억여원의 세금고지서였다고 회고했다. 적자투성이의 학교를 물려받으며 이 총장은 “자산은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교수 직원 학생 동문들이 지닌 지식 지혜 경험을 끌어내고 단합하는 것이 시급했다. 이 총장은 지식경영의 요체로 ‘섬김 문화’를 주창했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섬기는’ 열린 사고의 인재를 육성하자는 것이었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과 정보를 내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귀하게 대접받고 신뢰가 형성될 때만 서로 나눠주고 돕고 싶어집니다. 지식과 정보는 나눌수록 커지며 자신에게도 많은 것이 돌아온다는 믿음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이경숙 총장)
‘제2 창학’을 선언해 동문들에게 ‘등록금 한번 더 내기’운동을 벌이고 기업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했다. 지식경영에 필수적인 행정과 재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학교 물자 구입을 인터넷 경매회사 옥션을 통해 온라인화하고 종합전산망을 갖추는 작업이 병행됐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언오 상무는 “이 총장은 확고한 비전을 갖고 아래에서부터 대화하고 설득하는 부드러운 리더십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진행형인 개혁〓이 학교에는 현재 사회 각계에서 활동하는 62명의 겸임교수가 있다. 1학기에 정교수와 겸임교수를 통틀어 학생들의 강의 평점이 가장 높았던 과목은 삼성전자 안승준 상무의 ‘직업과 경력개발’.
또 적자투성이였던 학교 재정은 2001년 자립도 98%로 올라섰다. 전체 예산 가운데 국고 지원이 2% 미만이라는 뜻. 학생들의 취업률은 1999년 2월 73.2%에서 2002년 2월 82.5%로 수도권 대학들의 평균(70∼75%)을 웃돈다. 학내에 11개 벤처기업도 유치했다.
이와 관련, 이 총장은 ‘조용한 대학에서 역동적인 대학으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실용지식을 가르치는 학교’, ‘여성 리더를 배출하는 학교’라는 ‘브랜드 차별화’를 강조한다.
아직도 교수 계약제나 학생들의 강의평가제에 이견을 보이고 있는 교수들이 있듯이 숙명여대의 새로운 경영 실험은 아직 진행중이며, 따라서 개혁의 물결은 이제 막 시작됐는지 모른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