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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TV사극들 "어찌하옵니까"…문화재청, 고궁 밤촬영 금지

입력 | 2002-10-23 18:05:00

지난해 7월 KBS 드라마 ‘명성황후’ 제작팀이 창경궁 명정전 앞에서 임시 천막을 쳐놓고 촬영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우리궁궐지킴이


“몇년전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 밤, KBS 사극 ‘왕과 비’ 제작팀이 국보 225호인 창덕궁 인정전 기둥에 LPG가스통 4개를 매달아 놓고 야간 횃불 촬영을 하기도 했다. 바람을 타고 불똥이라도 튄다면 큰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강임산 ‘우리궁궐 지킴이’ 대표)

국내 TV사극에선 유난히 밤 촬영 장면이 많다. 극적인 반전을 불러오는 역모 등이 밤에 이뤄지는 경우도 있지만 엑스트라를 적게 써도 규모가 커보이는 효과 때문에 밤에 촬영하는 장면이 적지 않다.

그런데 최근 문화재청이 고궁에서 TV야간촬영을 전면금지해 방송가에 불똥이 떨어졌다. 지난달 25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이협의원이 “고궁야간촬영 허가는 법규상 부여되지 않은 권한을 문화재청이 어긴 위법행위”라고 지적한데 따른 것이다.

문화재청이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고궁에서 야간촬영을 허가한 것은 2001년 70건, 2002년 8월말 현재 38건 등 모두 108건에 이른다. 야간촬영은 전체 고궁촬영 허가 261건의 41.4%를 차지했다.

고궁 사극 촬영은 여러 차례 문화재 훼손이란 지적을 받아왔다. 궁궐 내전이 출연진의 탈의실로 변하고, 무거운 방송장비와 조명기구 등은 오래된 목조 건축물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금연지역인 사적지 고궁에서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버리는 제작진의 행태도 위험한 일이다. 심지어 경복궁내 왕비의 처소인 ‘교태전’의 현판 위에 창덕궁의 ‘대조전’ 현판을 덧붙여 촬영하는 모습도 시민 단체에 의해 신고되기도 했다.

문화재청의 야간 촬영 불허로 가장 곤란해하는 쪽은 11월6일 첫 방송 예정인 ‘장희빈’. KBS1 ‘제국의 아침’은 고궁 장면이 없으며, SBS ‘대망’은 자체 세트에서 촬영을 하고 있다.

KBS 드라마국의 안영동 주간은 “조명을 조절해 낮에 밤 장면을 촬영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전북 부안 격포 인근에 왕궁 세트를 만들 계획이나 완공되려면 10년가량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강임산 ‘우리궁궐 지킴이’ 대표는 “궁궐은 당대의 활용보다 후대에 온전히 물려줘야 하는 문화유산”이라며 “수익을 많이 남기는 방송사들이 ‘왕궁 세트’를 만들어 촬영하지 않는 것은 횡포”이라고 지적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