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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철칼럼]대선 '이상 증후군'

입력 | 2002-10-23 18:27:00


지금 우리는 유례 없는 ‘해괴한’ 대통령 선거를 경험하고 있다. 해괴하다는 말은 대선정국이 곳곳의 여러 ‘이상 징후’ 속에서 종전에 볼 수 없던 궤를 따라 미묘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선거 투표일(12월 19일)을 두 달도 못 남긴 시점이라면 각 정당은 대선후보를 확정한 데 이어 지금쯤은 후보간의 선거전이 한창일 때다. 그런데 눈앞의 상황은 어떤가. 누가 과연 대선후보인지 불투명하고 대선에 임하는 정당의 모습도 뚜렷이 잡히지 않고 있으니 해괴하달 수밖에 없다.

▼흔들리는 대선후보▼

이를 두고 안개정국이라고도 하지만 그보다는 인위적인 인상이 짙다. 우선 각 정파의 대선진용 구축작업에서 그런 징후가 잡힌다. 한마디로 그 진원은 집권세력이요, 밖으로 나타난 것이 집권여당 민주당이다. 대선을 앞둔 여당이 이처럼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인 예는 기억이 없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지금의 민주당으로는 권력형 부패와 대통령 친인척비리란 족쇄 때문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변장을 결심한 것 아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까짓 변장인들 못하겠는가.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개혁국민정당 창당발기인대회에서 ‘대통령 모시고 힘깨나 쓰던 사람들이 노무현 흔들기를 한다’고 했다. 예삿말이 아니다. 민주당 실세들이 민주당 공식 대통령후보를 흔들다니 도대체 무슨 해괴한 말인가. 참으로 이상한 징후가 아닌가. 그는 그동안 울분 속에 참아 온 당내 사정을 터뜨린 것이고 그의 말에는 최근의 정국상황이 함축돼 있다. 그 본질은 ‘국민통합 21’의 정몽준 후보와 민주당 조직을 어떻게 연계시키느냐는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여론조사 지지율이 떨어진 노무현 후보에서 지지율이 뜬다는 정몽준 후보로 말을 갈아타자는 것 아닌가. 그 사전 정지작업을 민주당 후보단일화 추진협의회(후단협)가 맡고 나섰고, 그 고리가 일전에 무산된 ‘4자연대’였다. 이쯤 되면 선거전 흐름은 정상이 아니다.

아무런 정당조직 없는 무소속 정몽준 의원이 대선 사무실에서 뜻 맞는 사람을 기다린다? 이것 이상하지 않은가. 뜻을 같이한다는 사람이 누구인 줄도 모르고, 또 얼마나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지금까지 알려진 정몽준 후보는 그렇게 무모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또 우리 정치인들이 달랑 국민통합이란 구호에 감동을 받아 몰려들 사람인가. 이러니 인위적인 냄새가 왜 나지 않겠는가.

물 건너갔다는 ‘4자연대’는 성사여부를 떠나 그런 움직임 자체가 지금 저변에서 흐르고 있는 이상 징후를 말해 준다. 한번 그 속을 따져 보자. 민주당의 후단협, 자민련, 이한동 후보, 그리고 정몽준 후보의 ‘국민통합 21’ 중 앞의 3자는 김대중 정권의 출발에 기여한 DJP연합을 같은 뿌리로 하고 있다. 그동안 성형수술 조금 하고 변장했다지만 DJP연합의 주역들이란 점을 감출 수 없다. 이들에게 둘러싸인 정 후보는 어떤 색깔인가. 초록동색이라고, ‘DJ신당’ ‘DJ양자론’도 그래서 나오는 것 아닌가. 정 후보도 그런 소리가 싫다면 정체성 문제로 더 이상 우물거릴 때가 아니다.

▼인위적인 구도 가능성▼

‘4자고리’가 끊어졌다고 해서 이상 징후가 없어졌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다시 나타날 개연성은 더 커졌다. 4자연대가 무너지고 정파별 약진이 시작됨으로써 대선정국의 불안정성도 따라 높아졌다. 결국 개별적이고 은밀한 막후접촉을 통한 이합집산을 부추길 공산이 크다. 여기에 인위적인 힘이 개입할 여지, 이상 징후 가능성도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이점을 경계해야 한다. 권력은 항상 자기 입맛에 맞는 쪽으로 매사를 몰아가는 법이다. 더욱이 이번 선거는 집권세력의 안위가 걸린 숨막히는 고비가 아닌가. 털어서 먼지 안 날 정치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실제로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과정 때 경선에 나섰던 후보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줄줄이 도중 퇴장했던 사실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대선정국의 큰 흐름을 볼 때 아무래도 권력이 막바지 용틀임을 해대는 분위기다. 경우에 따라 대선 판도를 뒤집어 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구성된 집단은 건강한 조직이 아니며 이질적 요소의 집합은 다시 흩어지게 마련이다. 그런 진용으로는 결코 민심을 얻을 수 없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