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으로 남을 것인가, 패션단지로 변모할 것인가.’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단지로 70년대 경제발전에 기여한 서울 구로공단(현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변신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와 이곳을 관리하는 한국산업단지공단은 이 지역을 벤처·첨단산업의 메카로 발전시킨다는 계획. 그러나 관할 금천구는 ‘공단’형태는 경쟁력이 없다며 패션단지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공단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패션의류 종합판매를 강행해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정부 방침과 현실의 충돌〓금천구 가산동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내 2단지는 30여개의 대형 의류할인매장이 들어서 ‘패션거리’의 중심으로 불리는 곳. 그러나 최근 산업단지공단이 보낸 공문 때문에 업체들은 뒤숭숭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공단측은 자사 브랜드만 팔 수 있게 규정한 ‘공장배치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공배법) 규정을 업체들이 어기고 있다며 매장 25곳에 대해 이달 말까지 시정을 요구했다.
이에 상인들은 30년 전의 ‘낡은 법’으로 시장 원리를 막는 행정편의주의라며 반발하고 있다. 금천구할인매장협의회는 공배법 개정과 관련해 지난달 말 대책회의를 가진 데 이어 20일 다시 대응책을 논의하는 등 조직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문제의 발단〓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공업용지여서 원칙적으로 판매시설이 들어설 수 없었으나 99년 공배법이 일부 개정되면서 입주업체에 자사 브랜드 판매가 허용됐다.
지난해 8월 대형할인매장인 ‘마리오’가 들어서면서 문제가 표면화됐다. 지상 8층, 지하 1층, 연건평 5500평으로 이 일대 최대 규모인 ‘마리오’는 200여개 매장이 입주해 이 일대를 ‘패션거리’로 알린 상징적인 매장.
그러나 산업단지공단은 마리오측이 아파트형 공장으로 사용하겠다는 계약을 어겼다며 11차례에 걸쳐 시정명령을 내렸고 급기야 검찰에 고발하는 등 제재에 나섰다.
▽해법 없는 평행선〓산업단지공단과 산업자원부는 업체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전국 25개 산업단지에서 유사한 요구가 잇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 일대를 상업용지로 바꿀 경우 땅값이 상승해 특혜 시비를 낳을 수 있다는 게 산자부의 판단.
그러나 금천구는 이미 산업단지로서의 효용성이 떨어진 만큼 이곳을 남대문이나 동대문 같은 패션 메카로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천구는 준공업지역으로 돼 있는 2단지 12만평 가운데 5만6000평을 상업용지로 바꿔줄 것을 서울시에 요청해 놓은 상태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