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 먹어라.’ 이건 누구나 다 아는 욕이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달콤한 엿과 욕의 결합은 1964년 공동출제 중학입시에서 연유한다. 선다형(選多型) 문제에 엿기름 대신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을 묻는 질문이 있었다. 출제자는 ‘디아스타아제’를 정답으로 했는데, 보기 가운데 ‘무즙’으로도 엿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사단이 됐다. 학부모들은 법원에 제소해도 소용이 없자 무즙으로 만든 엿을 솥째 들고 나와 ‘엿 먹어라’를 외쳐 결국 구제를 받았다는 사연이다.
▼치열한 경쟁속 오답시비 늘어▼
수십 년 전 ‘무즙 파동’이 오늘날 사법시험에서 재현되고 있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사정은 이렇다. 사법시험의 최종 합격자를 1000명으로 하면서 시험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올해의 경우 1차 응시인원 2만4707명에 합격인원이 2640명이었다. 10 대 1에 육박하는 경쟁률이다. 이처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오답 시비가 극에 달해 최근 ‘1차 불합격취소소송’이 부쩍 늘고 있다.
지금까지 소송으로 구제된 인원이 1998년 785명, 1999년 527명, 2001년 258명에 이른다. 10월 8일 대법원은 1999년 시험 중 4문제를 출제오류로 인정했으니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구제된 사람 가운데 1103명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는데 그 청구액이 138억원이나 된다. 사법시험 관리를 맡고 있는 법무부는 ‘소송공포증’에 걸릴 지경이다.
소송은 ‘진실’ 규명을 목적으로 하고 학문은 ‘진리’ 탐구를 위해 존재한다. 시험은 학문 세계의 테스트 방법이다. 진리를 가늠하는 방편으로 이용되는 수단이다. ‘진실’은 하나이지만 ‘진리’는 그렇게 명쾌한 답변을 할 수 없다는 점에 어려움이 있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인간이 무엇이고, 신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진리’를 말하지 못한다. 대학은 진리가 아니라 진리 탐구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가르치는 곳일 뿐이다. 시험은 ‘잠정적 진리’를 테스트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진리’에 관한 다툼이 있을 때 그 판단을 누구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까. 대법원도 의견이 갈리면 ‘합의재판’을 한다. 학문세계에서도 견해대립이 있을 때 학자들은 그들만의 합의방법을 가지고 있다. 장기간에 걸쳐 매우 신중하고 섬세하게, 완전히 개방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재판과 크게 다르다.
실무적인 합의는 시간과 인력의 제한을 받지만 학문의 ‘이론’은 그렇게 내린 결론을 진리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험문제의 정답에 대한 ‘합의’는 이 부분의 전문가인 학자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것이 순리라고 할 수 있다.
시험 소송의 피고인이 ‘법무부장관’이라고 해서 수험생과 법무부가 싸우는 것은 아니다. 법무부는 시험관리만 할 뿐이고 출제와 심사 등의 모든 과정은 일부 실무가들이 참여하지만 대부분 교수들의 책임으로 이루어진다. 법무부는 시험내용에 관여하지 않는다.
출제과정을 보면 눈물겹다. 문제은행을 3인이 검토하고, 출제위원 5인과 검토위원 4인이 13일의 합숙을 통해 5회 이상 검토를 끝낸 문제를 최종 선정한다. 시험이 끝난 뒤에는 수험생의 이의신청을 받아 3차로 나누어 전문가 20명이 전원 합의로 정답심사를 하여 오류를 수정할 기회를 갖는다. 이 정도의 절차를 통해 확정된 정답이라면 법원은 명백한 하자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존중해주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그럼에도 얼마전 대법원 판결은 1심이 2문제, 2심이 1문제를 오류로 판정한 것을 오히려 4문제로 확대했다.
▼단순문제 출제 質저하 불보듯▼
이런 상황에서 ‘최고시험’의 권위가 유지되기는 어렵다. ‘오답’에 깜짝 놀란 시험위원들은 출제를 기피하고, 심오한 이론문제의 출제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80% 이상이 판례 태도를 묻는 단순 지문으로 도배되어 있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판례가 ‘진리’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다. 사법시험의 이런 실상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그 ‘장맛’은 결국 법원도 봐야 하는데, 교수들이 ‘엿’을 고아서 ‘먹어라’를 외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딱한 일이다.
배종대 고려대 법대 학장 jdbae188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