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학자들은 미래에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의식을 컴퓨터 속으로 입력시켜 ‘로봇화’ 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로봇화한 인간으로 분장한 인공지능 연구가 한스 모라벡. 사진제공 김영사
◇로보사피엔스/페이스 달루이시오 지음 피터 멘젤 사진 신상규 옮김/240쪽 2만4900원 김영사
인간을 닮은 인조물, 혹은 로봇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류의 오랜 숙원 중의 하나다. 이는 신의 영역에의 도전일 수도 있고,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달래려는 행위일 수도 있다. 좀 더 지능적이고 정교한 로봇을 만들려는 일련의 노력은 이미 첨단 시설이라고 불리는 공장들의 자동화를 가져왔고, 극심한 위험으로 기피되는 일터에서 인간을 해방시켰다. 하지만, 더 사람 같은, 더욱 지능적인 로봇을 만들려는 노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이런 종족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매우 근본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질문이 될 것이다.
의족과 인공 관절, 인공 눈을 통해 인간은 점차 우리가 만든 인공 피조물과 비슷해져 가고 있는 반면, 로봇들은 유기 물질로 된 피부를 이식 받고 스스로의 감정도 표현하게 되면서 사람과 비슷해져 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로봇의 원칙은 과연 지켜질 수 있을지, 로봇 스스로가 복제를 통해 번식을 해가면서 로보 사피엔스(Robo Sapiens)와 호모 로보투스(Homo Robotus)가 등장하게 될 것인지, 그렇다면 그것이 그들이 만들어갈 사회의 균형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이런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하게 될지는 그 누구도 장담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로보 사피엔스(Robo Sapiens)라는 책의 제목은 매우 도전적이다. 로봇의 발전이 사람보다 더 우월한 종의 탄생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암묵적 두려움의 근원을 표면에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인간은 신체적 정신적 측면에서 상당한 한계를 갖는다. 예컨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노화로 인해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거나 행동 양식을 바꿔 가는 데 매우 어려운 상태에 이르게 된다. 혹자는 이런 노령 인류가 사회 전체를 위해 ‘생활 양식’이라는 이름의 지식 저장소 역할을 하며, 잘 변화하지 않는 것이 새로운 세대가 보고 배울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는데 꼭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오늘날 생활 양식의 변화 속도는 급격히 빨라진 반면 인류의 평균 수명은 크게 연장돼 그 균형이 깨지게 됐고, 따라서 이 같은 사회 구조는 점차 그 효용성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한한 학습 능력과 수명을 가진 새로운 종족을 탄생시킨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의 변화를 통해 이뤄낼 수 없는 불연속적 변화를 다른 방식으로 이뤄 내기 위해 숙명적인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극단(!)의 해석도 있을 수 있다.
인간의 지능은 오랜 기간을 걸쳐 조금씩 발전해 온 진화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몇 번의 매우 급작스런 변화의 시기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150만 년 전에 도구와 불을 쓰기 시작한 호모 이렉투스(Homo Erectus)의 등장이나, 20만년 전 현재 인류의 모습과 비슷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등장 등이 그것이다. 지금 우리가 실험실에서 보고 있는 로봇들은 이와 유사한 불연속적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는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개발되고 있는 로봇 중 기술의 발전이나 사회의 변화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100여 개를 선정, 개발자들의 인터뷰와 함께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사진들을 실었다. 저널리스트인 달루이시오(Faith D’Alusio)와 사진 작가인 멘젤(Peter Menzel)은 2년간 전 세계의 주요 로봇 연구실을 찾아 개발자들과 직접 인터뷰를 하고, 각 로봇들의 멋진 포즈를 포착해 각 실험실별 혹은 로봇별로 인터뷰 내용과 사진을 정리해 딱 한 권의 멋진 책으로 만들어냈다.
피터의 필드 노트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포함해, 기본적으로 비전문가를 대상으로 쓰여진 내용은 독자들에게 마치 직접 실험실을 방문해 연구 개발자들과 대화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더불어, 아직까지는 멀게 느껴지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추측보다는, 생명체와 같은 특성을 지니는 기계를 만드는 데서 기쁨을 찾는 로봇 학자들과의 생생한 목소리에서 로보틱스라는 학문 분야에 대한 열정도 전달받을 수 있다.
윤송이
사실상 대부분의 로봇들은 아직 연구 단계에 있고 앞으로 더욱 개발돼야 할 부분이 많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렇게 책을 엮어가는 과정을 통해 로봇이 인류의 진화라는 측면에서-신체적인 것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까지-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며 로보 사피엔스라는, 인간과의 공존이 필수적인 새로운 종족의 탄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우리와 함께 미래를 살아갈, 그리고 오늘 세계 곳곳에서 그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는 변화의 주체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원제 Robo sapiens:Evolution of a New Species)
윤송이 와이더댄닷컴 이사·MIT 미디어랩 이학박사(인공지능 전공) sg@widerth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