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일 동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병풍(兵風)’ 수사는 주간 오마이뉴스의 폭로가 그 출발점이다. 인터넷 신문이 내는 이 주간지가 5월 21일 이정연(李正淵)씨 병역면제 의혹 은폐대책 회의 및 신검부표 파기 의혹을 보도하면서 시작됐던 것.
의혹의 핵심은 97년 7월 김길부(金吉夫) 당시 병무청장이 한나라당 일부 의원 등과 함께 은폐대책 회의를 갖고 정연씨 신검부표를 파기했으며, 김 전 청장은 이 사실을 1월 병역비리 검찰 수사 당시 김대업(金大業)씨에게 진술했다는 것.
8월초 김씨와 한나라당 사이의 맞고소 고발이 이뤄지자 검찰은 사건을 서울지검 특수1부에 배당한 뒤 관련자 10여명을 곧바로 출국금지하고 병적기록표 위변조 의혹을 중심으로 실체 규명에 들어갔다. 특히 김씨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의 부인 한인옥(韓仁玉)씨에게 돈을 받고 정연씨 병역비리에 개입했다는 전 국군수도병원 부사관 김도술씨(55)의 자백이 담겨 있다”며 녹음테이프를 8월12일 제출하면서 수사는 급진전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8월 중순이 지나면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3월 검찰로부터 ‘국회에서 정연씨 병역면제 의혹을 거론해 수사 계기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민주당 이해찬(李海瓚) 의원의 발언이 신호탄이었다.
이어 김씨가 제출한 테이프에 대해 ‘판단 불능’ 결론이 내려졌다. 일주일 뒤 김씨가 다른 테이프를 제출했지만 이 테이프에 대해서는 “편집 조작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까지 내렸다. 이에 앞서 김씨가 제출한 2개 테이프의 제작 시기가 대화내용을 녹음했다는 99년 4월보다 한참 뒤인 99년 5월과 2001년 10월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김씨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김씨는 9일 “이 후보의 차남 수연(秀淵)씨 병역비리에 직접 개입했다”는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지만 이 역시 수사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 5명의 검사와 수사관 등 39명을 투입, 고소고발 당사자 20여명과 참고인 144명 등 170여명을 소환조사하고 140여회에 걸쳐 각종 수사자료에 대한 조회를 요청했다. 또 계좌추적전담반을 투입해 이 후보의 측근 이형표(李亨杓)씨 등 관련자 7명과 그 가족 등 33명에 대해 계좌추적을 벌였지만 의혹을 입증할 단서를 잡는데 실패했고, 결국 ‘근거 없음’ 결론을 내리게 됐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병풍수사발표 말말말▼
25일 병풍(兵風)수사 발표 자리와 검찰청 주변에는 이번 수사와 관련된 수많은 말들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왔다.
▽김씨는 의인(義人)이며 강직하고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다-민주당 박양수(朴洋洙) 의원, 26일 국회 국방위에서 전 의무부사관 김대업씨를 칭찬하며.
▽병풍(兵風)수사는 실체적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기보다는 법률적 판단으로 봐야 한다-정현태 서울지검 3차장, 25일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장남 정연씨와 차남 수연씨의 병역비리 의혹 수사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병역 면제의 실체는 규명하기 어렵다고 말하며.
▽김대업(金大業)씨가 ‘대업(大業)’을 완수하지 못한 것은 편파 수사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이름에 걸맞지 않게 행동했기 때문이다-서울지검의 한 간부, 25일 병풍 수사 발표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답하며.
▽음모가 때로는 진실보다 강할 수 있지만 그대로 믿어서는 곤란하다-김경수 서울지검 특수1부 부부장, 25일 병풍 수사는 엇갈리는 진술보다는 객관적인 물증에 의존했다며.
▽병무청에는 워낙 민감한 사안이 많아 중요한 회의를 통상 대책회의라고 불렀다-김경수 서울지검 특수1부 부부장, 97년 당시 병무청 대책회의는 현안이 있는 경우 병무청장이 차장 국장 과장 등과 대책을 논의하는 회의를 통상 ‘대책회의’라고 지칭했지만 정연씨 병역비리를 은폐하기 위한 대책회의는 없었다며.
▽확실하지 않은 것을 갖고 검찰이 소환 조사를 시작하면 어지간한 국민들은 모두 검찰에 불려와야 할 것이다-서울지검 관계자, 25일 병역비리 의혹을 받고 있던 이정연씨를 부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