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오른쪽)이 국회 정보위원장실에서 신건 국정원장과 만났으나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다. - 서영수기자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은 25일 “국가정보원(원장 신건·辛建)이 정치인 공직자 언론인 등을 무차별적으로 불법 도청해 온 것은 국내정치 개입을 금지한 국정원법 위반”이라며 “신 원장은 정권만 바뀌면 당장 구속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이어 “신 원장이 국정원의 도청 사실을 전면 부인하는 것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도청공포가 확산되자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것이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국정원의 도청 실태에 대해 보고한 뒤 기자와 만나 그 내용의 일부를 공개했다.
-정 의원의 통화나 발언내용도 도청됐다고 주장했는데….
“1개월반 전 외국 정보기관 요원과 서울시내 호텔에서 식사할 때의 대화도 도청됐다. 테이블 밑에 도청기를 설치했던 것 같다.”
-도청기를 직접 확인했나.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나중에 (국정원이 만든 도청) 자료를 읽어보니까 식당 테이블 밑에 도청기를 달았던 것 같다. 전화내용을 미리 도청한 뒤 약속장소에 도청기를 설치해 두면 가능하다.”
-취재기자와의 통화도 도청됐다고 이야기했는데….
“나는 정치부 기자와 자주 통화한다. 한 방송사 기자와 통화한 내용도 도청됐고, 최근 그 녹취록을 읽어 봤다.”
-녹취록을 공개할 수 있나.
“필요하면 할 수 있다.”
정 의원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국정원의 불법 도청기록’을 입수했다면서 잇따라 폭로해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한화그룹 김승연(金昇淵) 회장-청와대 비서관 △박지원(朴智元) 대통령비서실장-북한 관련 사업가 요시다 다케시(吉田猛) △이근영(李瑾榮) 금감위원장-이귀남(李貴男) 대검 범죄정보기획관간의 전화 통화내용을 ‘국정원 기밀자료’라면서 공개한 바 있다.
-신 원장은 “절대 불법도청하지 않았다”며 감사원과 국회에 국정원 감청시설을 공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 세곡동 국정원 시설은 40만평이다. 실제 도청하는 장소가 어디 있다고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나.”
-본보가 25일자에 국정원이 비밀감청팀을 구성했고, 올해 휴대전화를 도청할 수 있는 장비를 추가 도입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조직의 존재를 알고 있었나.
“내가 누차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주장했듯이 휴대전화도 도청할 수 있다. (국정원의 비밀감청팀도) 언론이 보도했다면 사실이겠지.”
-과거 정권에서도 정보기관이 도청을 했나.
“정보기관에서 오래 근무한 내가 도청문제를 거론한 것에 대해서 걱정하는 분들이 있지만, 도감청법이 개정된 이후로 불법도청은 묵인돼선 안 된다. 법 개정 이전의 과거 관행은 그 시대의 산물로 봐야 한다.”
-국정원에서 정 의원의 발언을 문제삼아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그래 봤자다.”
정 의원이 이날 국회 본관 정문 앞에서 기자들에게 도청 자료에 관해 설명하는 동안 한나라당 의원들 몇몇이 다가와 “정 의원, 나를 도청한 자료는 없어?” “26일 국정원 예산문제를 다룰 때 따질 계획이니 자료를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