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경주오픈마라톤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사연을 갖고 달린다. 1만여명이 참가해 27일 고도 경주를 수놓은 2002동아경주오픈마라톤. 4개월 전 남편과 아버지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모자는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며 달렸다. 또 마라톤으로 절망을 딛고 부도 위기를 넘긴 이의 얘기는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준다.
"하늘나라에 있는 남편과 함께 뛰었어요."
하프코스에 출전한 빈정애(賓貞愛·41·부산시 남구 용호동)씨는 결승선을 넘어서자마자 눈시울을 적셨다. 먼저 10㎞를 완주하고 기다리던 아들 김지환군(11·부산용호초교 5년)이 달려와 울먹이며 엄마의 품에 안겼다.
마라톤 마니아였던 빈씨의 남편 김범준(당시 44세·전 부산시청 교통관리과)씨는 지난 6월18일 울릉도에서 아침조깅을 하던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빈씨 부부는 부산시가 월드컵 준비 모범공무원을 대상으로 마련한 울릉도 연수에 참가하던 중이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누구보다 달리기를 좋아했고 건강했던 남편이었거든요. 남편은 우리 가족의 달리기 선생님이었어요. 마라톤은 정직하므로 연습하는대로 결과가 나온다고 늘 강조했지요. 지난해 동아경주마라톤에서는 큰 애(민환·부산용호중 3) 작은 애(지환)와 함께 가족 4명이 10㎞를 완주했었는데…."
빈씨는 남편이 숨지기 전까지 함께 부산 용호동 이기대공원을 오르내리며 이번 대회를 준비해왔다. 남편 김씨는 지난 3월17일 동아서울국제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것을 포함해 그동안 달린 거리가 7000㎞나 될 정도로 달리기를 사랑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아이들과 함께 이를 악물고 연습을 했습니다. 뛰지 않았으면 저도 몸져 누웠을 겁니다. 뛰기 위해서라도 먹어야했으니까요. 비오는 날에는 25층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땀을 흘렸고요."
빈씨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경황이 없어 지난 7월6일의 동아경주오픈마라톤 신청마감일을 놓쳐버렸다. 이에 빈씨는 동아마라톤 홈페이지에 "가족이 함께 뛰기로 약속했다. 신청이 마감됐지만 뛸 수 있게 해달라.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남편에게 완주메달을 바치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빈씨는 또 8월말까지 그동안 연습한 내용을 동아마라톤 홈페이지에 27차례나 올렸다. 빈씨의 애뜻한 '사부곡(思夫曲)'은 마라톤 참가자들을 울렸다. 빈씨의 글을 읽고 빈씨를 격려한 건수가 5000회를 넘었다. 한 네티즌은 "가장을 잃은 절망 속에서도 재기하려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힘 내세요. 두 아들과 희망의 꽃을 가꾸세요. 아이들 아빠가 하늘나라에서 응원할 것입니다"라고 위로했다.
"집에 걸려있는 남편의 사진을 보면 그이가 당장 사진 속에서 뛰어나올 것 같아요. 평생 달릴 테니까 결코 욕심내서는 안된다고 하던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두 아들 열심히 키우면서 달릴 거예요. 아이들 아빠가 언제나 우리 가족을 지켜보며 하늘나라에서 함께 뛸 것으로 믿습니다. 이 완주메달을 남편 영전에 올리면 얼마나 기뻐할까요."
말을 마친 빈씨는 함께 뛴 여동생 빈영애(賓英愛·34·김해중 교사)씨와 지환군을 데리고 남편이 잠들어 있는 경남 양산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경주=특별취재반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