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은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한국 록의 영원한 대부 신중현이 50년 음악 이력의 대표곡들을 현재의 음악관에 입각해 두장의 CD에 거침없이 응집시켜 놓았다. 이 작업은 신중현이 자신의 우드스탁 스튜디오에서 둘째 아들 윤철(일레트릭 기타)을 비롯한 까마득한 후배들과 함께 했다는 점에서 더욱 값지다.
이 거장의 자기 음악 리메이크는 처음이 아니다. 90년대 초에 ‘무위자연’이라는 이름으로 CD를 발표했고 80년대에도 이런 저런 앤솔로지(선집·選集)들을 남겼다.
하지만 그 음반들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의존했거나 선곡이 안일해 아쉬움을 남겼다. 그런 결점이 이번 ‘보디 앤 필’에선 느껴지지 않는다.
64년 ‘빗속의 여인’부터 신중현 사단의 출세작인 ‘커피 한잔’과 ‘님은 먼 곳에’를 거쳐 한국 록의 이정표인 ‘미인’과 ‘아름다운 강산’, 그리고 리듬앤블루스의 걸작 ‘석양’과 ‘미련’ 등 60∼70년대 대표작들이 그야말로 백열하고 있다.
이 앨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스튜디오 라이브’ 녹음 방식이다. 이는 연주 현장의 생생함과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담으려는 시도다. 이 방식은 악기 파트별로 녹음해 나중에 믹싱하는 게 아니어서 부분적인 교정과 첨삭이 불가능하다. 연주력과 가창력을 장담하지 않고서는 꿈도 못 꾸는 방식이다.
신중현은 자신의 보물과 같은 명작들에게 밴드의 진정한 자유혼을 입혀 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 시도는 성공적이며 두 장의 음반을 채운 트랙마다 싱싱한 연주의 향기가 배어 나온다. 특히 기타 라인의 연주와 녹음은 이 거장의 반세기에 걸친 노하우가 발휘된 대목으로, 부자가 각각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를 맡아 혼연일체의 하모니를 펼쳐 보인다.
오랫동안 음지의 천재로 칭송받아온 신윤철은 고전이 된 아버지의 텍스트들의 깊이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당대의 호흡을 병치시켜 각 노래들의 표정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최고와 최선의 기타 플레이다!
우울하게, 그리고 어떤 대목에선 내소적으로 웅얼거리는 신중현의 목쉰 보컬은 처연한 비장미로 다가온다. 사실 그가 보컬을 맡은 것은 ‘신중현과 엽전들’과 80년대의 ‘세 나그네’라는 3인조 밴드 시절 뿐이었다. 그러나 신중현의 목소리로 듣는 이 명곡들은 김추자와 ‘펄시스터스’, 장현과 김정미같은 불세출의 보컬리스트들의 원곡에 못지 않은 또다른 개성의 결이 느껴진다.
2002년 가을에 배달된 이 음반은 거장의 불사조와 같은 기백이 표명된 걸작이다. 모든 한국의 대중음악가는 이 음반 앞에서 모자를 벗어야 할 것이다.
강헌·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