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폐막한 2002 부산아시아경기대회. 한국이 기대 이상으로 많은 금메달을 따서 종합성적 2위 ‘탈환’을 실현하고 북한팀의 참가까지 성사시켜 아시아경기 역사상 최대의 대회가 되었다고 우리는 기뻐했다.
그러나 나는 개막식을 부산에서 참관하면서 머리가 무거웠고, 폐막은 일본에서 먼발치로 보면서 머리가 무거웠다. 도쿄에서 머리가 무거웠던 것은 우선 아시아경기대회의 메달수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은 채 3년 연속해서, 더욱이 올해엔 2개 분야에서 일본이 노벨상을 타게 되었다는 신문 보도를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몰락한 옛 소련과 동독처럼 ‘체력이 곧 국력’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맹신하고 있는 것일까…. 그보다도 더욱 나의 머리를 무겁게 했던 것은 “국위(國威)홍보에 빈틈없는 북한 응원단의 ‘미소작전’에 한국 여론이 기우뚱했다”고 비아냥거린 아사히신문의 보도였다.
▼한반도기 입장은 충격▼
만수대 예술단원과 ‘인민보안성’의 여성 취주악단원으로 조직된 미녀부대가 노린 대로 부산의 스타디움에선 그녀들의 선창에 따라 “우리는?” “하나다!”를 연호하며 “6월의 서해교전으로 악화된 대북 감정을 날려버린 채 남한 관객은 ‘통일’이란 말에 취해 버렸다”고 이 일본신문은 적고 있었다.
그보다 2주 앞서 열렸던 대회 개막식에선 선수단 입장행사가 내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국제대회에선 개최국의 국어 표기발음에 따라 개최국 문자의 알파벳 순으로 각국 선수단이 입장하고, 마지막은 개최국 선수단이 들어옴으로써 긴 행렬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선 국제대회인 만큼 선수단의 나라 이름은 한국어만이 아니라 뒤이어 영어로도 불러 주었다. “일본, JAPAN” “중국, CHINA” 하는 식으로….
나는 마지막에 등장하게 될 남북한 단일팀을 뭐라고 호명할지 궁금했다. 주최국과 비(非)주최국, 호스트와 게스트를 함께 뒤섞은 참으로 야릇한 단일팀, 그 기(旗)는 ‘한반도기’로, 영문명은 ‘코리아’로 한다는 것은 이미 신문 보도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유엔에 따로따로 가입하고 국기도 저마다 다른, 하나 아닌 두 나라로 이뤄진 이 괴이한 ‘단일팀’을 대회 개최국의 국어인 우리말로는 뭐라고 부를지…. 마침내 한반도기를 앞세우며 남북한 팀이 입장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장내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코리아, KOREA!”….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이 이미 우레 같은 갈채와 환호가 터졌다.
코리아, KOREA? 남북한이 통일되기 전 한국어와 영어가 통일된 것일까? 한국어가 영어에 이른바 ‘흡수통일’된 것일까? 분명한 것은 ‘코리아’란 한국말은 없고, 한반도에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있을 뿐 ‘코리아’는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우리는 둘이다. 이것이 현실이요, 진실이다.
2002 아시아경기대회 개막식을 보면서 나는 오늘의 남북관계가 다시 30년 이전의 과거로 후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1972년 7·4 공동성명이 나오기 전까지의 남북한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을 ‘괴뢰’로, 실체 아닌 허수아비로, 존재해서는 안 될 비(非)존재로, 문자 그대로 무시(無視)해 왔다. 요컨대 서로가 ‘있는 것’을 ‘없는 것’처럼 억지를 부려 왔던 것이다.
▼비현실적 환상 버려야▼
“코리아, KOREA”에 환호하는 오늘의 경우는 거꾸로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억지를 부림으로써 다같이 분단 상황의 ‘현실’을 은폐하고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괴뢰’가 횡행했던 30년 이전의 상황과 표리를 이룬다고 할 것이다. 개명천지에 ‘괴뢰’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남북한 군대가 휴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에 하나의 ‘코리아’도 없다. 따라서 모든 남북 화해와 친선 교류도 우리는 하나가 아닌 둘이라는 현실의 투철한 인식 위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빌리 브란트의 말처럼 책임질 수 있는 정치란 오직 현실의 지반 위에서 출발하는 정치다. 그것은 비현실적인 환상이나 허상 위에 구축될 수는 없는 것이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