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3일 오전 5시. 러시아 군인들이 장갑차 100대에 나눠 타고 러시아 자치공화국인 체첸의 에니칼로이 마을에 들이닥쳤다. 지저분한 군복에 보드카 냄새를 물씬 풍기는 군인 20여명이 아미나트 마고메도바(15)의 집에 들어섰다.
얼마 뒤 총성이 들리고 아미나트의 비명이 들려 왔다. 그녀의 오빠 아흐메드와 아슬란베크가 소리쳤다. "그녀를 놔주고 차라리 우리를 죽여." 다시 몇 발의 총성이 더 들렸고 담 너머로 옷을 반쯤 벗은 러시아 특수부대원이 총에 맞아 피범벅이 된 아미나트를 겁탈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병사가 소리쳤다. "이봐, 서둘러. 아직 따뜻할 때(살아 있을 때) 해치워야지."
영국 일간 가디언 일요판인 옵서버는 27일 폴란드 기자 크리스티나 쿠르차브 레드리흐가 체첸에서 보낸 르포 기사를 실었다. 쿠르차브 레드리흐 기자는 대(對) 테러전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되고 있는 러시아군의 잔혹한 탄압과 이에 맞선 체첸 반군들의 보복 등 '피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다음은 기사 요약.
4월13일 오전 5시. 장갑차가 손과 발이 묶인 한 체첸 청년을 거리 한구석의 철조망 안에 내려놓았다. 잠시 후 수류탄 또는 다이너마이트로 보이는 폭발물이 터지고 청년의 몸이 산산조각났다. 체첸 사람들에게는 이미 익숙해진 풍경이다.
최근 러시아 연방군은 사람을 죽일 때 폭발물을 터뜨리는 방법을 자주 사용한다. 처형자 숫자를 집계하거나 사체를 찾기 어렵게 하기 위해서다. 거리 곳곳에서 개들이 파묻어 놓은 시체를 파헤치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얼굴에 씌워진 비닐봉지로 질식사한 시체나 눈이나 귀, 갈비뼈 또는 생식기가 도려진 시체도 종종 발견된다.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와치'에 따르면 올해 7월15일∼8월15일 사이에만 체첸에서 59명이 총에 맞아 숨졌고 64명이 납치됐다. 중상자는 168명이고 298명이 고문을 당한 것으로 조사돼 있다.
경찰 특공대 '오몬' 병력이 주류인 러시아 연방군은 탱크와 장갑차, '정화 차량'으로 불리는 고문용 차량으로 무장한 채 닥치는 대로 마을 사람들을 잡아 들여 고문을 자행한다. 반군 소탕을 위한 정보 수집을 한다는 이유다. 수천 달러를 내면 체포된 가족을 돌려 받을 수 있지만 살아 돌아와도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한다.
죽은 가족의 시체를 돌려 받을 때 체첸 국민들은 러시아군에 의해 숨진 게 아니라 스스로 자폭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문서에 강제로 서명해야 한다.
이런 일을 겪은 체첸 사람들은 반군이 돼 러시아에 보복에 나선다. 러시아의 잔혹성이 결과적으로 체첸 반군을 양산하고, 더욱 과격하게 만들고 있는 것. 올 여름 제르노보스크에서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 겁탈당한 68명의 여성 가운데 45명이 게릴라에 자원했다. 체첸 대통령 아슬란 마스카도프 산하 군대 또한 더욱 과격해지고 있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