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빛이 고와지고 주근깨가 없어지는 박가분을 화장하실 때 잊지 마시옵.’
1924년 1월 1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국내 최초의 화장품 박가분(朴家粉) 광고 카피의 한 구절입니다. 당시 박가분은 탁월한 미백(美白) 효과를 앞세워 여심(女心)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박가분은 화장품에 포함된 납의 유해성 때문에 1937년 스스로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65년이 지난 지금. 인공미(人工美)의 전도사로 여겨지는 화장품 업체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름다움의 비결을 자연에서 찾고 있습니다. 녹차, 콩, 꿀 등 식탁에 오를 만한 먹을거리가 화장품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영국 화장품업체 ‘바다샵’은 콩, 올리브 오일, 꿀 등 천연 원료로 만든 화장품을 소개해 국내에 자연주의 화장품 바람을 몰고 왔습니다. 프랑스 화장품 업체 ‘록시땅’은 자신들의 제품은 먹어도 된다고 선전할 정도입니다.
천연 원료를 쓴 자연주의 화장품이 인기를 끌면서 예전에 없던 일도 벌어집니다. 아이에게 줄 식음료를 고를 때처럼 화장품도 유통기한을 따져보고 고릅니다. 또 화장품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전용 냉장고까지 나왔습니다.
최근 화장품 업계에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남미 등 오지에서 천연 물질을 추출하던 화장품 업체들이 신비스러운 동양의 자연에 눈을 돌린 것이죠.
이달 18일 정원이 있는 2층 양옥집을 개조한 서울 강남의 한 레스토랑에서 미국 자연주의 화장품 오리진스의 신제품 발표회가 열렸습니다. 감이 주렁주렁 열린 레스토랑 정원을 배경으로 중국 송나라 황제가 마셨다는 ‘화이트 티’로 만든 ‘퍼펙트 월드’ 라인업이 소개됐습니다.오리진스는 중국 고산지대에서 나는 희귀식물 ‘화이트 티’를 1년 동안 연구해 화장품으로 내놨다고 합니다. ‘동양의 신비’를 내세운 이 제품은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에서 발매 6개월만에 70만개가 팔려 나갈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화장품 업계는 ‘자연’ ‘환경’ 등에 이어 ‘동양’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동양 문화의 본류(本流)를 자부하는 한국의 화장품 업체들이 토종 자연주의 화장품이나 한방 화장품 등을 내세워 세계 시장을 공략할 날을 기대해봅니다.
박 용기자 경제부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