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나소스와 델피의 아폴론 성역. 아폴론 성역의 표고는 해발 533-600m. 성역의 세로 지표 길이는 190m. 아폴론 신전의 신전 바닥면은 해발 573m./사진제공 노성두
《세상 도처에서 도시가 불탄다. 소돔과 고모라도 불탄다. 바벨탑은 무너졌다. 쌍둥이 빌딩도 무너졌다. 위대한 폐허의 야심찬 복원을 꿈꾸며 오래 전 예술가들이 상상의 벽돌로 지어 올린 이상 도시의 모습은 과연 어땠을까? 미술의 영토에서 텃세를 부리던 금빛 배경을 걷어내고 지상의 도시를 건설했던 13세기 풍경화가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꼭대기에 신들의 도시를 건설했던 피디아스, 그리고 죽음의 서늘한 그림자가 어른대는 네크로폴리스는 모두 인간의 삶과 죽음이 숨쉬는 도시들이다. 미술사학자 노성두씨가 뭇 도시의 흥망 뒤에 삼밭처럼 얽혀 있는 역사와 예술의 흔적을 답사하고 파헤친다.》
해발 2457m. 그리스 한복판에 우뚝 솟은 파르나소스는 신화가 알알이 박힌 영산이다. 아리따운 요정과 엉큼한 사티로스가 재미나게 어울렸다는 동굴들이 지금도 계곡마다 켜켜이 남아 있다. 깎아지른 파르나소스가 곤두박질치다가 잠시 숨을 고르며 허리끈을 추스르는 곳이 바로 델피다. 거뭇한 벼랑을 돌려세우고 발치 까마득히 이테아 만의 은빛 파도가 아스라이 보인다. 그야말로 누울 자리 한 뼘 없이 깎아지른 계곡에 대리석 도시가 쏘옥 안겨 있으니 ‘델피는 허공에 매달린 도시’라는 호메로스의 시구가 실감난다.
병풍처럼 굽이치는 비탈 가운데 겨우 한 자락이 델피의 전부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곳을 세상의 중심이라고 불렀다. 여기가 세상의 배꼽자리라서 대지와 하늘이 몸을 찰싹 붙이고, 산악과 계곡이 정답게 어울리며, 인간과 신이 사사로이 말을 튼다고 믿었다. 그런데 델피는 왜 누울 자리 한 뼘 없이 깎아지른 벼랑에 들어앉았을까?
우주의 배꼽 ‘옴팔로스’. 참외배꼽처럼 생겼다. 델피 박물관./사진제공 노성두
까마득한 옛날 일이다. 신들의 맏형 제우스가 어느 날 독수리 두 마리를 날려보낸다. 세상의 끝이 어디쯤인가 궁금해서였다. 그런데 반대 방향으로 날아간 독수리 둘이 한 곳에서 만났단다. 그곳이 바로 세상의 중심, 델피였다는 것이다.
델피는 세상의 중심답게 슬기로운 현자들이 죄다 몰려들었다.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던 탈레스부터 파우사니아스는 ‘여행기’란 책에서 “델피 성역에 서 있는 한 기둥에서 탈레스가 쓴 이 경구를 읽었다”고 기록했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면서 무지를 깨쳤던 소크라테스까지 현자 일곱이 세상 지혜를 저작권료 한 푼 안 받고 공개한 곳도 이곳이다. 이처럼 인간의 지혜가 사무치고, 신비스러운 천기가 난무했으니, 아폴론 신전의 무녀들에게 신탁을 물으러 오는 사람들도 줄을 이었다. 딸 아이 혼사 길일이 언제일까, 장터에 무얼 내다 팔아야 재미를 볼까, 피티아 제전에서 어떤 선수한테 돈을 거나, 이런 식이었다. 끝도 없는 시답잖은 상담에 아폴론도 골치가 아팠던지 꾀를 부리기 시작한다. 호메로스는 ‘헤르메스 송가’에서 아폴론이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말한다. “물어 봤자 소용없을 걸, 하지만 주는 복채야 고맙게 받아야지.”
그러나 대부분 고객은 앞날이 걱정스러운 권력 실세나 지역 토호들이었다. 간혹 다가올 비극을 예감한 오이디푸스나 오레스테스, 또는 크로이소스 왕이나 알렉산드로스 대왕 같은 역사의 주인공들도 무녀들을 찾았다. 밭뙈기 한 평이 아쉬운 비탈 도시 델피가 번듯한 대리석으로 도배하기까지 모르긴 몰라도 무녀들 고쟁이 속에 챙긴 복채도 단단히 한 몫 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신탁과 예언이란 것이 워낙 밑천이 안 드는 사업이니까, 눈먼 돈 쓸어모으기는 땅 짚고 헤엄치기보다 쉬웠을 것이다. 무녀들은 또 자기네끼리 비밀조합을 만들어서 신탁을 문의하는 큰손들의 고급 정보를 함께 공유했고, 이를 바탕 삼아 그리스 도시 국가들 사이의 분쟁을 막후에서 조정하고 안녕을 확보하는 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행사했다. 삼발이 솥에 걸터앉은 무녀들이 쉬어터진 목소리로 아는 소리를 지껄이면 순식간에 그리스 전역이 들썩거렸다니까, 이를테면 고대의 CNN이었던 셈이다.
신탁은 델피의 아폴론 신전에서 이루어졌다. 무녀들이 둥지를 틀었던 아폴론 신전은 누가 언제 지었을까? 최초의 아폴론 신전은 월계수 나무를 켜서 얽은 보잘것없는 움막이었다고 한다. 햇살과 더불어 비바람이 숭숭 통했을 것이다. 두 번째 신전은 새의 깃털을 밀랍으로 발라 붙여서 지었다. 움집 원시주거에서 단박에 포스트모던 건축으로 진화한 셈이다. 깃털은 아폴론이 바람의 신에게 부탁해서 조달했다고 한다. 세 번째는 청동 신전. 그러나 청동을 통째로 구워서 신전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목조건축에서 빗물에 노출되기 쉬운 부분만 동판을 씌우지 않았을까? 네 번째는 본격적인 석조신전이 섰다. 이번에는 아폴론이 직접 나서서 팔을 걷어붙였다고 한다.
“포이보스 아폴론은…. 판판하고 길쭉한 너럭돌을 차곡차곡 바닥에 채워 넣었다. 바닥돌 위에는 트로포니오스와 아가메데스를 시켜서 돌로 문턱을 올렸다. 이들은 에르기노스의 두 아들로 불멸의 신들에게 아낌을 받았다. 신전을 에워싸고 수많은 족속과 사람들이 몰려들어 돌에다 돌을 쌓아올렸다. 그리고 입을 맞추어 노래를 부르면서 새 신전을 찬양했다.” (호메로스 ‘아폴론 송가’)
▽필자 노성두씨는…▽
59년 경남 산청 출생. 1982년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졸업. 82년부터 독일 쾰른대 철학부에서 서양미술사, 고전고고학, 이탈리아 어문학을 전공해 1994년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에서 몇 안 되는 르네상스 미술 전문가로 ‘고전 미술과 천 번의 입맞춤’ ‘유혹하는 모나리자’ ‘천국을 훔친 화가들’ ‘보티첼리가 만난 호메로스’ 등 30여 권의 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