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렸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같다. 변변한 스타 한명 없고 주전 선수 대부분이 20대인 애너하임이 월드시리즈 챔피언 반지를 끼리라고는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애너하임의 전력을 찬찬히 뜯어보면 우승의 원동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애너하임은 내가 몸담고 있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같은 아메리칸리그로 경기때마다 다양한 작전으로 상대를 괴롭히는 까다롭기 짝이 없는 팀이었다.
포수 출신인 마이크 소시아 감독의 아기자기한 작전으로 펼쳐지는 기동력 야구는 마치 일본의 저팬시리즈를 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애너하임은 월드시리즈에서도 줄기차게 '치고 달리기'를 계속했다.
이처럼 메이저리그에선 노모 히데오로 비롯된 동양야구의 황색열풍이 스즈키 이치로에 와서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중이다. 시즌중 우리 팀의 제리 매뉴얼 감독도 나에게 몇차례나 동양야구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왔다. 힘의 야구로 상징되는 메이저리그가 조직력의 동양야구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증거다.
사실 젊은 애너하임 선수들로선 이렇게 큰 경기에서 오히려 부담없이 자신의 실력을 100% 발휘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또 객관적 전력에서 처지는 만큼 선수단이 뭉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30대 고참선수들이 대부분인 샌프란시스코는 이겨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부담으로 작용한 듯하다. 또 최고의 명장으로 불리는 더스틴 베이커 감독은 6차전에서 방심한 나머지 잘 던지던 선발 러스 오티스를 너무 일찍 뺐고 7차전에선 부진한 리반 에르난데스를 방치해 역전패를 당하는 등 경기가 풀리지 않았다.
어쨌든 이번 월드시리즈를 통해 빛을 본 애너하임의 조직 야구는 메이저리그에서 또 하나의 조류가 될 전망이다.
이만수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코치 leemansoo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