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연한 대통령후보다. 당선할 자신도 있다. 관심을 가져달라.”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작지만 간절한 외침을 토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28일 현재 대선 출마를 선언한 ‘군소 후보’ 7명이다.
이들은 이회창(李會昌) 노무현(盧武鉉) 정몽준(鄭夢準) 권영길(權永吉) 이한동(李漢東) 후보와 동등한 대우를 받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이들은 ‘군소 후보’로 대접받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한목소리로 기성 정치권을 비난한다.
이들이 선거 기탁금을 5억원씩이나 내면서 도전에 나선 데 대해 세간에는 ‘과시욕’이라거나 ‘돈키호테’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나름대로 선거캠프와 조직, 선거비용은 물론 대선 공약까지 내놓고 있다.》
▽김허남(金許男) 복지민주통일당 후보〓15대 국회 최고령 의원이었던 김 후보는 홍익인간 이념 실현을 표방하고 있다. 김 후보는 “엉망진창인 요즘 정치를 그냥 둬선 안 되겠다 싶어 출마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가 내세운 득표 기반은 자신이 총재를 맡고 있는 신라종친연합회 및 신라김씨 연합 대종원. 그는 “신라에 뿌리를 둔 200여 성(姓)의 종친을 다 합하면 3000만명에 이른다”며 “종친들만 단결하면 달리 선거운동을 할 필요도 없다”고 자신했다. 함경북도 도민회장인 그는 이산가족들의 지지도 기대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50평짜리 당사는 종친회 사무실을 겸하고 있다.
▽김옥선(金玉仙) 우리겨레당 후보〓7, 9, 12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 후보는 14대 대선에도 출마했던 남장 여성정치인이다. 김 후보는 “평생 헌신해온 교육사업과 사회사업을 바탕으로 교육입국을 이루고 부패정치인을 과감히 퇴출시키겠다”며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 400여개를 선정해 당선하는 즉시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130여평의 서울 종로구 인사동 당사에 10여명이 상근하며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 그는 “언론이 나의 출마 사실만이라도 제대로 알려주면 표가 쏟아질 텐데 답답하다”며 “선관위가 기탁금 증액을 제안한 이후 후원금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세동(張世東) 전 안기부장〓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의 ‘분신’으로 잘 알려진 장 전 부장의 출마에는 ‘전심(全心)’이 담겨 있는지가 관심의 초점이었으나 정작 전 전 대통령은 그의 출마를 말렸다고 한다. 장 전 부장은 출마의 변을 통해 “권력욕은 없다. 동서간 지역갈등을 해소하고 남북통일을 완수하기 위해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낡은 정치관행에서 탈피해 돈과 조직 없이 단기필마로 뛰어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당선을 자신한다”고 말했다. 장 전 부장의 21일 출마선언 때는 정치권 인사들은 거의 없었고 전직 안기부 직원 300여명이 참석했다. 그는 25, 26일 중앙일보 대선후보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1.3%의 배가량인 2.7%를 얻어 관심을 끌었다.
▽서상록(徐相祿) 노년권익보호당 후보〓삼미그룹 부회장에서 웨이터로 변신해 화제를 모았던 서 후보는 ‘서비스 대통령’을 표방하고 있다. 그는 “여의도에서 썩어빠진 까마귀들을 다 몰아내야 정치개혁이 이뤄진다”며 기성 정치권에 대해 강한 불신감을 나타냈다. 서 후보는 “국회의원의 일정기간 당적 변경 금지, 부정부패의 공소시효 폐지 등을 통해 정치개혁을 이루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인터넷 여론조사를 하면 지지율이 14%나 된다”며 “3000명의 사이버 선거운동원을 가동해 950만표를 얻어 당선할 테니 두고 보라”고 장담했다. 그는 선거자금은 ARS를 통해 500만명으로부터 2000원씩 걷어 100억원을 모은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명승희(明承禧) 민주광명당 후보〓가정주부인 명 후보는 “젊었을 때부터 교육운동, 여성계몽운동과 나라꽃 사랑운동을 줄곧 해오다 보니 남성 중심의 정치가 너무나 썩어 보여 출마를 결심했다”며 “깨끗하고 투명한 나라살림으로 21세기 여성정치 시대를 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당선에 대비해 입법·사법·행정부의 고위공직자들로 정권인수준비팀까지 구성했다”고 말했으나, 명단은 공개하지 않았다. 여의도에 100여평의 당사를 갖고 있는 명 후보는 지지자들이 많아 선거자금 마련도 문제없다고 자신했다. 명 후보는 유명 무속인이 명씨 성을 가진 여성이 이번 대선에서 당선할 것이라고 예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영규(金榮圭) 사회당 후보〓대학교수 출신인 김 후보는 당선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밝힌 유일한 경우다. 그는 “이번 대선은 4500만 민중이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세워 정치세력화를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다”며 “기득권층이 망쳐 놓은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그는 비정규직 폐지, 완전개방형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실시, 수도 지방 이전, 남북이 각각 주권국가로 인정하는 헌법 개정 등을 공약했다. ‘사회당과 민노당이 후보를 단일화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 후보측은 양당의 이념이 다르기 때문에 후보단일화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허경영(許京寧) 민주공화당 후보〓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정책보좌역 출신인 허 후보는 97년 15대 대선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출마다. 15대 대선에서는 3만9055표(0.2%)를 얻었다. 허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취임식 이튿날 계엄령을 선포, 기성 정치인 3000여명을 퇴진시켜 위대한 한국을 만들겠다”며 “상류층으로부터 연간 147조원의 세금을 걷는 대신 소득세 재산세 종합토지세 부가가치세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TV토론에 나가서 1시간만 연설하면 당선은 떼어 논 당상이다”며 “지지자 한 명당 100만원씩 내도록 해서 법정 선거비용 350억원을 모금해 언론 광고를 집중적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통일당의 안동옥(安東玉·41) 총재도 29일 기자회견을 갖고 대선 출마를 선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