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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시즌]느긋한 김성근 초조한 김성한

입력 | 2002-10-29 18:09:00


“즐기는 마음으로 경기를 한다.”

플레이오프 1차전이 끝난뒤 LG 김성근감독(60)은 다소 뜻밖의 말을 했다.

2-1로 앞선 9회말 이상훈이 기아 김인철에게 동점홈런을 맞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고 묻자 그는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야구라는 게 원래 그런 것 아닌가. 즐기는 마음으로 게임을 보고 있다. 야구는 선수들이 하지 내가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기중 더그아웃에서도 그는 ‘유유자적’이다. 마치 남의 팀이 경기를 하는 걸 지켜보는 것처럼 여유롭다. 3시간 남짓한 경기시간 동안 표정한번 안 바뀐다.

야구스타일 역시 많이 바뀌었다. 플레이오프 1,2차전을 통해 김감독은 번트를 딱 두 번 댔다. 1차전 1회 무사 1루에서 이종열에게 보내기번트를 시켰고 2차전 9회 유지현에게 스퀴즈 번트를 지시했다. 정규시즌에서 주자만 나가면 희생번트를 구사하던 김감독이 아니었다. 그는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확실히 달라졌다. 플레이오프에 5차례 나가 모두 고배를 마셨던 감독치곤 여유가 넘친다. 마치 야구를 달관한 듯한 모습이다.

이에 반해 2위로 플레이오프에 나선 기아 김성한감독(44)은 사령탑으로 맞는 첫 포스트시즌이어서 그런지 조급함이 엿보인다.

결정적인 대목이 2차전 9회. 4-2로 쫓긴 1사 2,3루에서 김감독은 고의 볼넷을 지시했다. 만루작전을 쓴 것이만 경기종반엔 역전주자를 내보내지 않는 게 불문률. 전문가들은 이 작전을 의아해 했다. 기아는 만루뒤에 이강철이 내준 몸에 맞는 볼과 LG의 스퀴즈번트로 4-4 동점을 내줬다.

정규시즌에서 선 굵은 야구를 고집하던 김성한감독은 1차전을 진 뒤 충격을 받았는지 2차전에선 주자만 나가면 보내기 번트를 지시, 양감독의 스타일이 정규시즌과는 정반대로 변해버렸다. 또 김성한감독은 마무리로 낙점했던 김진우가 불안하자 플레이오프 도중 그를 중간계투요원으로 돌리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선발투수로만 뛰었던 루키 김진우를 당초 마무리로 내세웠던 게 무리였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정규시즌 성적은 13승1무5패로 기아의 절대우세. 팀순위도 기아가 2위, LG가 4위. 하지만 양팀 사령탑중에 여유를 갖지 못하고 쫓기고 있는 측은 오히려 김성한감독인 것같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PO징크스’ 난형난제 기아 8승8패-LG 12승14패

기아와 LG는 플레이오프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닮았다.

기아는 전신인 해태시절 한국시리즈에 올라가기만 하면 100% 우승확률을 기록하며 9차례나 패권을 차지했지만 플레이오프 성적은 신통치 않다. 4번 진출해 두차례만 이겨 반타작을 거뒀을 뿐이다. 특히 90년대엔 삼성(90년)과 롯데(92년)에 잇달아 패하며 포스트시즌에 강한 해태 답지않게 ‘플레이오프 징크스’를 만들어냈다. 플레이오프 통산성적은 16경기에서 8승8패.

다섯차례 플레이오프에 나선 LG도 두 번만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통산성적은 26경기에서 12승14패. LG는 특히 ‘김성근 징크스’가 찜찜하다. 김감독은 그동안 5차례 플레이오프에 나갔으나 한번도 한국시리즈에 오르지 못했다. 86, 87년의 OB와 89년의 태평양, 91년의 삼성과 96년의 쌍방울이 그렇다. 특히 쌍방울 때엔 현대에 2연승후 3연패해 탈락하는 첫 번째 불명예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김성근감독이 꼴찌를 강팀으로 변신시키는 ‘조련사’임은 분명하지만 진정한 ‘승부사’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큰 경기에 약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김감독이 그 한을 풀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