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람들은 금요일을 바라보며 산다. 주말을 잘 보내기 위해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수도 주급(週給)으로 계산하는 것이 보통이다. 생활의 기본 단위가 일주일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 세대를 바라보며 산다. 아이들이 잘 되는 일이라면 허리띠 졸라매는 일쯤이야 문제도 아니다. 그 중에서도 아이들 교육문제는 자신의 전 인생을 걸만큼 비중이 큰 과제다.
이런 우리의 교육 편집증이 오늘의 경제 재건을 가져온 추동력이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로 인한 폐해도 적지 않다. 아니, 오늘날 우리 사회가 당면한 거의 모든 과제에 이 과도한 교육열이 원인균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결코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사회병폐 근원은 교육 실패▼
부패 문제만 해도 그렇다. 자신이 금요일에 한번 화끈하게 놀아 보자고 부패하는 것이라면 윤리적 갱생의 여지가 있다. 부패에 따른 기회비용의 지출과 주말의 쾌락이 손익분기점을 넘는 순간 도덕적 자책력이 회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패를 아이들의 장래 보장과 사교육비 마련을 위해 저지르는 일종의 ‘도덕적 순교’라고 인식하는 한 이를 교정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도무지 부패에 대한 윤리적 수치심을 부활시킬 방도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노사간의 갈등도 바로 이 다음 세대 지향성과 지칠 줄 모르는 교육열로 인해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 학원비가 노사간 대립의 쟁점이 되는 나라는 아마 우리말고는 지구촌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이 임금 인상을 주도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사교육비 부담이 결국에는 우리 경제의 대외 경쟁력 약화로 귀착되는 셈이다.
금년 내내 문제가 되었던 서울 강남 지역의 아파트값 급등 현상이 이 지역의 사교육 여건 때문이라는 해석은 이미 정설처럼 되어 있다. 부동산 투기에도 우리의 왜곡된 교육열이 일조를 했다는 얘기다.
그뿐만이 아니다.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정치권의 저능도 따지고 보면 이 나라 교육정책이 잘못된 데서 오는 결과다. 도대체 태어나서 성인이 되기까지 말하기나 토론하는 능력을 체계적으로 배워 본 일이 없는 이들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조정과 타협에 이를 수 있겠는가. 말로 하는 정치가 민주주의라면, 말하는 능력의 배양 없이 민주 정치가 꽃피기를 기다리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
민주주의의 선진국이라는 나라들도 최근 들어 시민권 교육을 별도의 교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하물며 전통사회의 생활양식에 젖어 있는 우리가 남과 더불어 사는 연습을 학교로부터 제공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순탄한 사회적 관계를 이루며 오순도순 살아갈 수 있겠는가.
권위주의 시대가 퇴조하면서 지속적인 개혁과 쇄신에 대한 주문이 쏟아져 나왔지만 사실 혁파와 변화란 재교육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제도와 장치를 바꾸면 그에 따라 기존의 생활양식을 교정하는 재교육 과정이 뒤따라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이 부분이 없었기 때문에 여러 개혁정책이 구두선에 머물고 말았다. 개혁의 실패는 기실 교육의 실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정보사회의 도래는 사회구조의 지속적인 변화를 그 본성으로 한다. 그런 만큼 새로운 질서에 순치하기 위한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은 정보사회의 또 다른 얼굴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교육의 일상화가 정보사회의 본질인 셈이다.
▼百年大計 실천할 후보 누군가▼
이렇게 보면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교육만큼 중요한 과제는 따로 없는 것 같다. 교육이라는 창을 통해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가 당면한 거의 모든 사회적 병폐가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 문제의 성격 자체가 교육을 통하지 않고서는 해결되기 어려운 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온 국민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과제 중 하나인 까닭이다.
12월의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간의 설전이 날로 날카로워지는 모양이다. 그러나 교육을 집권의 최우선적 과제로 삼겠다는 후보는 아직 없는 것 같다.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교육을 통해 우리 사회의 현안을 해결해 보려는 혜안도 없으면서 집권 의욕만 앞서 선거전에 나선 후보들이 전부라면 실패하는 대통령을 미리 보는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다음 대통령은 ‘교육 대통령’이어야 한다.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의회행정학·미국 버클리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