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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 저편 160…1929년 11월 24일 (11)

입력 | 2002-10-29 18:27:00


올 2월에 할매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에 온 문상객들이 삼나무 집 여자가 아이를 가진 것 같다고 수근덕거렸다. 그 날부터 어머니가 좀 이상해졌다. 할매의 죽음이 서러워 그러는 거겠지, 모녀 사이가 끔찍했으니까, 라고 아버지는 말했지만 삼칠일이 지나고 사구제가 지났는데도 어머니의 어지럼증과 구역질은 심해질 뿐이었다. 아주 심할 때는 사흘을 마냥 누워지냈다. 먹지도 못하고 뒷간에도 가지 못할 정도였다. 보약을 먹어도 침을 맞아도 무당을 불러 우환굿을 해도 소용이 없었던 것은, 삼나무집 여자의 배가 나날이 불러왔기 때문일 것이다.

우철은 암탉 꾸러미를 고쳐 들었다. 대체 뭐라고 하면서 건네주어야 하나? 어머니가 보내셨습니다, 축하합니다, 란 말은 도저히 할 수 없다. 차가운 공기를 마시고 싶다, 훨씬 더 차가운 공기를. 우철은 얼음 아래로 흐르는 물의 기척에 귀기울이며 강을 건너 삼각주 한 가운데 섰다. 휭-휭-, 바람이 덤벼들 듯 정면으로 불어온다. 우철은 차가운 바람에 폐가 부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백조가 없다. 여느 때 같으면 용두목 언저리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을 텐데. 꽉! 백조가 날고 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복 여덟 아홉 마리나 된다. 날개는 저녁 햇살에 젖어 있는데, 날개에 가린 몸통은 파르스름하다.

너무 아름답다. 이렇게 강 한 가운데 서 있으려니, 전쟁 따위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하지만, 내가, 지금, 이 다리로 서 있는 삼각주가 얼음에 고정돼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얼음 아래를 흐르는 물에 쉴 새 없이 깎여나가는 것처럼, 얼마 안 있어 십일문 발을 디딜 장소조차 사라져 없어질 것이다.

엄지손가락에 가시가 박혀 욱신거린다. 우철은 손가락 살을 깨물어 가시를 빼내려 한다. 어디서 박힌 거지? 아마도 어제, 신사의 본전에서.

나무 판자 틈새로 새어든 오후의 햇살이 옆으로 길에 뻗어 있었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조그만 신체(神體)를 쓰다듬고서 속옷을 벗었다. 장소가 장소인만큼 어제의 합궁은 마치 무슨 의식 같았다. 어느 쪽이든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그냥 가만히 있어예, 안에 넣은 채로? 예. 참기 시합이네. 우리는 빈틈없이 꼭 껴안고, 하나가 되어 녹아 있는 부분만 느끼며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