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라토너의 병상 투혼’ 9월 폐렴증세로 삼성서울병원에 잠시 입원했던 손기정옹이 10월14일 폐렴증세로 또다시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사진은 지난 9월19일 입원했을때의 손옹(왼쪽)과 딸 문영씨.-동아일보 자료사진
"석달 전만 해도 정정하셨는데…. 그사이 너무 쇠약해지신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30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1702호 병실. 92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감독(32·체육진흥공단 마라톤팀)이 노환으로 입원해 있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옹(90)을 찾았다. 폐렴증세로 입원한지 2주가 넘도록 퇴원을 못하고 있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온 것.
황감독은 코에 호스를 꽂고 누워있는 손옹을 보자 말을 잃었다. "선생님이 그새 너무 마르셨네요. 석달 전만 해도 앉아서 식사도 하셨는데…."
손옹은 지난 14일 입원해 지금까지 치료받고 있다. 노환으로 누워서 식사를 하다가 기도로 음식물이 들어가는 바람에 한쪽 폐에 염증이 생긴 것. 입원 후에도 음식물을 삼키지 못해 경관유동식사(코를 통해 위에 호스를 연결해 급식하는 것)를 하고 있다. 올해만 3번째 장기입원.
그동안 병 간호를 해왔던 딸 문영(61)씨는 "아버님 심장이 튼튼해 그래도 버텨내셨답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벌써 운명하셨겠지요"라고 말했다.
문영씨는 황감독을 가르키며 "아버지, 이분이 누구인지 알아보겠어요?"라고 손옹에게 물었다.그러자 손옹은 "그럼…영조잖아"며 금세 황감독을 알아봤다. 손옹은 "소질을 더 계발했으면…"하고 말끝을 흐렸다. 황감독이 너무 일찍 마라톤을 그만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것.
손옹은 황감독만 보면 바로셀로나올림픽 마라톤 골인점인 주경기장에서 그를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기억을 떠올린다. 손옹은 당시 본보에 쓴 특별기고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할 말은 많은 것 같은데 머릿속이 텅빈 것처럼 아무 가닥도 잡을 수 없다.… 태극 무늬를 가슴에 단 선수가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을 본 순간 나는 두 다리에 힘이 빠져 그대로 주저 앉고 말았다"고 털어놨었다. 이 일 이후 손자뻘인 황감독은 손옹을 할아버지처럼 따랐다. 시간이 날 때마다 늘 병상의 손옹을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손옹이 문득 다시 말을 건넸다. " 보스턴에 갔던 애가 누구더라. 아,이봉주, 이봉주는 어떻지?" 문영씨가 "이봉주가 이번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 땄어요"라고 말하자 손옹은 그제서야 만족스러운 듯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이날은 손옹의 정신이 상당히 맑았다. 문영씨에 따르면 조금 뒤 다시 물어보면 누가 왔다 갔는지 기억을 못한다는 것. 손옹은 요즘 기력이 너무 떨어져 항상 누워서 지낸다. 그래서 식사를 제대로 못해 계속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손옹의 주치의 허우성 신장내과 교수는 "노환 때문에 오는 증세다. 폐렴증세는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앞으로 앉아서 지내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