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중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떻게 게임이 흘러갔는 지도 모르겠다”
기아 서정환코치가 삼성사령탑을 맡았던 97년 롯데와의 정규시즌 개막전에서 감독데뷔전을 마친뒤 한 말이다.
시즌 데뷔전이 그럴 정도인데 포스트시즌 데뷔전은 얼마나 떨릴까. 기아 김성한감독은 사령탑으로 치른 첫 포스트시즌 첫 경기인 26일 LG와의 플레이오프 후 공식기자회견에선 “평상시와 다름없었다. 그렇게 긴장되진 않았다”며 의연함을 보였지만 나중에는 “애간장이 녹는줄 알았다”고 살짝 털어놓았다.
역대 한국프로야구를 거쳐간 35명의 사령탑중 2년차 이내의 초보감독으로 포스트시즌을 경험한 감독은 모두 13명(프로원년은 제외). 이들의 포스트시즌 데뷔년도 성적은 과연 어땠을까.
놀랍게도 ‘포스트시즌 초보감독’들은 지난해까지 총 107경기에서 52승3무52패로 정확히 ‘반타작’을 했다. 초보라 팀을 제대로 이끌지 못할 거라는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는 기록.
처음 맞이한 포스트시즌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감독도 김응룡(해태·83년) 강병철(롯데·84년) 이희수(한화·99년) 등 3명. 이 가운데 김응룡감독은 유일하게 사령탑으로 부임한 그해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강병철감독과 이희수감독은 부임 2년만에 우승.
강감독은 84년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따낸 ‘무쇠팔’ 최동원을 앞세워 정상을 밟았고 99년 이희수감독은 정민철과 구대성의 두 황금팔을 앞세워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을 4연승으로 누른뒤 롯데와의 한국시리즈에서도 4승1패의 압도적 우세로 정상에 올랐다.
당시 이희수감독은 포스트시즌 초보답지 않은 두둑한 배짱과 절묘한 작전으로 야구판을 깜짝 놀라게 했다.
‘초보’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은 현대의 김재박감독. 김감독은 김응룡감독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부임 첫해인 96년 팀을 한국시리즈에 진출시켰다. 김재박감독은 ‘여시’라는 별명답게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작전과 냉정한 승부수로 화제를 모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해태의 벽에 막혀 2승4패로 정상 일보 직전에서 눈물을 흘렸다. 당시 김재박감독은 “심판판정시비라는 고도의 심리전을 펼친 김응룡감독에게 당했다”며 땅을 쳤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