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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 저편 161…1929년 11월 24일 (12)

입력 | 2002-10-30 18:01:00


입을 먼저 연 것은 그녀 쪽이었다. 안되겠어예. 조금만 더 참아라, 아주 따뜻하고 기분이 좋다. 아아. 움직이잖나. 움직이게 하지 말아예. 당신이 움직이는 거잖나, 봐라 또 파르르 파르르.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다가온다. 두근두근, 심장 소리가, 바스락 바스락 나의? 그녀의? 두근두근, 터져 나갈 듯한 심장 소리가, 두근두근, 나는 허리를 움직였다, 천천히. 바스락 바스락, 발소리는 멈췄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손등을 깨물며 소리를 죽였다. 딸랑딸랑, 울리는 방울 소리. 나는 허리의 움직임을 더욱 빨리 했다. 짝 짝, 박장(拍掌) 소리가 두 번 울렸다. 나는 사정했다. 두근두근, 우리의 고동 소리에 맞춰 발소리가 멀어졌다. 두근두근 바스락 바스락 두근두근 바스락바스락.

칙칙 폭폭 칙칙 폭폭, 열차 소리가 우철을 현실로 되돌려 놓으려 하는데, 우철은 또다시 기억 속으로 돌아간다.

그녀와 나는 혼인을 약속한 사이다. 반 년 전 아버지가 선을 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지인혜라고, 일곱 형제 중에서 여섯 째다. 첫 번째하고 일곱 번째만 남자고, 두 번째에서 여섯 번째까지가 줄줄이 여잔데, 그 여섯 번째라서 언니들한테 온 귀여움 다 받고 자랐다더라. 쌀집 처자다. 왜 너도 알지, 역 앞에 시타무라 이발소 옆에 커다란 쌀집. 집하고 창고도 다 따로따로 있고, 일하는 사람도 서넛이나 된다. 꽤 유복한 편이니까 혼수감도 많이 갖고 안 오겠나. 그런데 그 처자, 어머니한테 음식이니 바느질이니 배우면서 시집갈 준비하고 있는데, 열여섯 살 때까지 서당 다니면서 공부했다더라, 한자하고 한글도 읽고 쓸 줄 알고 명심보감하고 심청전 같은 책도 즐겨 읽는 모양이더라. 너보다 두 살이 많다. 미인은 아니라고 하더라만 며느리는 얼굴로 보는 게 아니니까. 마음씨 곱고 명랑하고 일 잘 하면 그만이다. 아무튼, 좋은 신부감이라고 평판이 자자한 처자니까 한 번 봐라. 만나보지 않고서야 아무 것도 알 수 없으니.

별 기대 않고 선을 보는 자리에 나갔는데, 절대 미인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각도에 따라서는 오히려 예쁘게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괜한 거드름도 피우지 않고 꾸밈없이 똑바로 눈을 쳐다보고 얘기하는 그 말투에 매료되어, 이 여자라면 평생을 같이 얘기할 수 있겠다 싶어 신부로 삼기로 결정했다.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