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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빚이 사람잡는다

입력 | 2002-10-30 18:21:00


카드빚이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카드빚으로 인한 자살 강도사건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급기야 친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직장인과 주부, 심지어 청소년들까지 카드빚에 내몰리면서 이로 인한 ‘잠재적 범죄’가 우려되고 있다.

▽카드 범죄 실태〓서울 수서경찰서는 30일 카드빚을 갚기 위해 아버지를 살해한 전모씨(28)에 대해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기 고양시에서 식당을 하는 전씨는 98년 이후 9000여만원의 카드빚을 진 상태. 어머니와 누나, 친구의 카드까지 빌려 승용차를 사고 유흥비로 탕진한 전씨는 결국 아버지가 가입한 상해사망보험금(최고 3억원)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에 따르면 전씨는 27일 오전 3시30분경 서울 강남구 개포동 부모의 집을 찾아가 잠자던 아버지(55·회사원)를 둔기로 마구 때려 숨지게 한 혐의다.

최근 경기 포천군 영북농협에서 벌어진 총기강도사건의 원인도 같다. 이 사건의 범인인 전모 상사(31)는 5개의 카드를 사용하다 빚에 쪼들리자 범행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29일 전북 군산경찰서에 위폐범으로 체포된 전직 은행원인 조모씨(24·전남 목포시)도 2000만원의 카드빚을 갚기 위해 범행했다.

부산지검의 한 검사는 “담당했던 형사사건의 50% 정도가 카드빚이라는 범죄 동기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경찰서 강력반 박학동 반장은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최근 발생하는 강도 절도 등 강력 범죄의 주요 원인에 대부분 카드빚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다.

▽멍드는 청소년〓카드빚은 청소년들의 윤리와 도덕심을 빼앗고 있다. 무심코 카드를 썼다가 빚에 쪼들리면서 자살이나 학원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부 성인인터넷 사이트에는 ‘카드빚 때문에…’라며 원조교제를 유혹하는 광고문구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30일 “8월 말 현재 10대 신용불량자는 9093명으로 이중 카드빚을 갚지 못한 경우가 58%인 5348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카드 연체로 인한 신용불량 비율은 1년 전 49.9%에서 올해 62.8%로 급증했다.

▽예측불허의 폭발성〓카드빚으로 인해 발생하는 최근의 범죄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카드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만 이를 갚을 개인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카드빚을 3개월 이상 연체한 ‘개인신용불량자’는 9월 말 현재 254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20명 중 1명이 카드빚에 신음하고 있는 셈이다. 이 중 1000만원 이상 연체자도 118만명에 달한다. 카드업계의 연체 잔액은 지난달 말 총 4조8000억원에 달했다. 6월 4조원, 7월 4조4000억원과 비교하면 매달 수천억원씩 카드빚이 급증하고 있는 것.

서울대 사회학과 한상진(韓相震) 교수는 “카드빚에 시달리다 보면 극단적인 한탕주의에 빠져 범죄를 저지를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결국 수백만명의 카드 연체자들이 ‘잠재적 범죄’에 빠져들 위험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