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30일 국회 16개 상임위가 4조2000억원이나 늘려놓은 내년도 예산안을 예결위 심의에서 정부안 수준(111조6580억원)으로 되돌려 놓기로 결정했다. 서청원(徐淸源) 대표가 직접 나서서 예산안 심의 단계에서 “유감스럽다”고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한나라당의 예산증액 철회 방침은 한나라당이 ‘야당 자격’이 아니라 ‘예비 여당’의 입장에서 예산을 심의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예산증액 소식이 전해진 뒤 한나라당에는 “예산 나눠먹기는 여야(與野)가 없느냐” “한나라당이 대통령선거 당선을 기대하면서 ‘김칫국’ 예산을 짰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 가운데 국회 운영위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매년 삭감을 주장했던 대통령 비서실 예산을 원안대로 통과시켜 준 것이 선거승리를 염두에 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이상배(李相培) 정책위원회 의장은 이날 한나라당 기자실로 찾아와 “언론에서 사설(社說)까지 써가며 지적하니까 난처하다”고 말했다. 당 관계자는 “당 민원실에도 시민들의 항의전화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 관계자는 “선거를 50일 앞두고 이런 비난을 견뎌낼 정당은 없을 것”이라며 발빠른 증액철회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한나라당이 거론한 우선 삭감대상은 국정홍보처 예산 및 국회 여성의원 전용 사우나.
한나라당은 “집권하면 국정홍보처를 없애겠다”는 공약을 내놓고도 국정홍보처 예산을 15억원이나 늘리는 데 민주당과 합의했다. 이 의장은 사우나 예산을 거론하면서 “목욕탕 예산은 참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 의장의 사과는 “17명뿐인 여성의원을 위해 1인당 3200만원꼴인 5억1200만원이나 들여서 사우나를 짓는 것은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지적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에는 현재 남성전용 사우나만 설치돼 있기 때문에 이를 삭감하기 위해서는 여성의원들과의 형평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나라당의 발빠른 예산축소 방침에 대해 당의 예산관련 실무자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야당 역할을 똑바로 못한 것은 잘못’이지만 예산증액은 민주당과 함께 한 것인데 한나라당만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현재로선 약속한 대로 4조2000억원대의 증액분을 예결위를 통해 정부안 수준으로 ‘전액 삭감’한다는 방침이다.
당 정책위, 예결위, 국회 예산정책국은 이날 ‘삭감 1순위’ 대상사업을 찾는 작업에 들어갔다. 당 예결위 강월구 심의위원은 “예산집행이 부진한 불용(不用)예산, 예산이 남아돌아 전용된 예산, ‘선심성’이란 지적을 받을 만한 예산, 동료의원의 반대가 있었던 예산 등이 1차 삭감대상이다”고 말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