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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기자의 현장칼럼]˝내 사위는 여자˝

입력 | 2002-10-31 16:11:00

어머니 강씨가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신석교 기자


토요일인 10월 5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웨딩드레스와 턱시도가 아닌, 정장 커플룩 차림의 ‘신랑’ ‘신부’가 동시 입장했다. 결혼행진곡 대신 ‘매일 그대와’라는 노래가 흘렀다.

결혼식 주인공인 한미진씨(가명·37·자영업)와 이주경씨(가명·39·자영업)는 둘 다 여자다. 이 동성커플은 지난해 9월 11일 각자의 후배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우연히 만나 한 달 뒤인 10월 10일부터 동거에 들어갔다. 한씨는 레즈비언이었고, 이씨는 만남 직전까진 이성애자였다.

주례가 끝나자 이씨의 홀어머니 강숙자씨(가명·67)가 단상에 올라왔다. 자신이 직접 맞춘 커플링을 두 사람에게 끼워줬다. 뺨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너희들 절대로 헤어지면 안 된다. 여자이고 동성애이기 때문에 변하고 그런다면 다 가짜다. 사랑한다면서 헤어지면 다 가짜다.”

한씨는 ‘어머니에게 드리는 글’을 읽었다.

함께 사는 세 여자가 손을 잡았다. 손가락에는 어머니가 해준 커플링과 딸 부부가 해준 감사의 반지가 끼워져 있다. 맨 윗쪽이 어머니 강씨의 손.

“드디어 제가 결혼을 합니다. 가정을 이루는 것이 꿈이면서도 결코 평범한 꿈이 아니었기에 접어야 했던 꿈이었습니다. 편견 따윈 아랑곳없이 ‘너희들은 꼭 만나야 될 사람들이다’면서 격려해 주신 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어머니. 언니랑 저 꼭 잘 살게요. (울음) 위하고 사랑하면서 욕심 없이 살아갈게요. 사랑합니다, 어머니.”

80여명의 하객들이 촛불을 들고 ‘사랑으로’를 노래하면서 결혼식이 끝났다.

피로연은 화기애애했다. 한씨와 10년간 가까이 지냈던 동갑내기 남자친구 양모씨(37·광고기획사 근무)는 한씨에게 “너는 시집을 갈 줄 알았더니 장가를 가냐?”고 큰소리로 말해 폭소가 터졌다. 부부는 대학 후배들이 잡아놓은 서울 우이동의 한 호텔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22일 밤 부부가 살고 있는 서울의 한 아파트를 찾았다. 이씨의 어머니 강씨는 5월 자신의 아파트에서 딸이 동성 애인과 함께 사는 것을 허락했다. 사고로 남편을 잃은 강씨는 30여년간 이씨를 뒷바라지하며 홀로 살았다.

기자〓동거를 반대하진 않았습니까.

강씨〓혼자보단 둘이 사는 게 낫지 않습니까. 나이 마흔이 된 딸이 이제야 제 짝을 만났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기자〓따님의 배우자가 여자라는 걸 언제 눈치채셨습니까?

강씨〓2월쯤 되었나, 딸이 전화로 미진이 자랑을 하면서 “사윗감으로 어때?” 하고 농반진반으로 묻는 거예요. 순간 알아차렸죠. 딸은 중매로 들어온 좋은 자리도 마다하고 “독신으로 평생 살겠다”고 해왔거든요.

기자〓결혼식을 강하게 권하신 이유는….

강씨〓나는 돌아간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사랑이 뭔지 압니다. 결혼은 책임감을 키워줍니다. 지난 2월에 저에게 커플링을 보여주며 둘이서 “평생 함께 살기로 약속했다”고 하기에 “이건 무효다. 둘이서만 (약속)하는 건 너무 외롭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다시 해주고 싶다. 어머니가 해주는 반지가 진짜 결혼반지다”고 막 주장했어요.

강씨는 남편이 긴 머리를 좋아했다는 이유로 지금도 머리를 기른다.

기자〓따님의 배우자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강씨〓없으면 전 못 삽니다. ‘딸’겸 ‘아들’ 겸 ‘사위’ 하나 얻은 걸로 생각합니다. ‘막내’(강씨는 한씨를 이렇게 불렀다)의 목소리는 제가 저승에 가서도 들릴 겁니다.

강씨는 퇴근하는 두 ‘딸’에게 뽀뽀를 해주며 “내 새끼 왔네” 한다. 결혼식을 앞두고는 친구들에게 전화해 “우리 딸 시집간다”며 자랑했다.

“어머니, 오늘은 퇴근하면서 이 이가 차안에서 얼마나 애교를 떨던지…. (웃음) ‘동해물꽈 백두0이’ 하면서….”(딸 이씨가 한씨의 뺨을 쓰다듬으며)

“뽀뽀는 안 했니?”(어머니 강씨가 흐뭇한 표정으로)

“어머니, 부럽죠?”(이씨가 한씨의 목을 간지르며)

“아이, 간지러워. 나 간지럼 잘 타잖아.”(한씨)

“막내는 내가 마사지해준다고 손만 대어도 간지럽다고 난리더라.”(어머니 강씨가 웃으며)

강씨는 커플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밤이 늦으면 “늙은이하고 있는 게 뭐가 재미있겠느냐”면서 방을 나선다. 방문 안쪽 잠김 버튼을 누르고 문을 닫는 것을 잊지 않는 섬세한 ‘시어머니’이자 ‘장모’다.

신혼방을 둘러보았다. 침대는 싱글 사이즈였다. 부부는 “둘이 자기에도 넓다”고 말했다. 부부는 서로를 ‘여보야’, ‘자기야’, ‘애기야’ 하고 불렀다.

부부의 양해를 얻어 침대 위에 놓인 이씨의 4㎝ 두께 다이어리를 펼쳐보았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e메일 전문(全文)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육필로 옮겨놓은 메모 162건 △함께 갔던 공연 및 영화 티켓 △한씨의 건강검진표 △2002월드컵 대진표(축구를 좋아하는 한씨를 위해 이씨가 컴퓨터에서 출력해 놓은 것)와 경기 스코어 기록 △한씨가 허리를 삐끗한 날짜와 증상에 관한 메모 등이 담겨 있었다. 다음은 2001년 12월 3일 오후 4시11분12초, 한씨가 이씨에게 보낸 청혼 e메일과 그 1시간 뒤 이씨가 보내온 회신.

‘첫눈 오는 날 청혼하고 싶어 그동안 꾹 참았습니다. 사랑합니다.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도록 청혼을 받아 주십시오. 앞으로 남은 인생살이를 함께 벗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한씨)

‘청혼 받으면 조금 빼야 되는데…. 당신을 너무 너무 사랑하기에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의 사랑에 감사하며 청혼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제가 부족함이 많다 하여도 이해해주고 지적해준다면 당신을 위해 앞으로 많이 노력하고 고쳐나가겠습니다. 당신 마음이 다시는 아프지 않게 당신만 사랑할게요. 영원히.’(이씨)

직장에 다니던 이씨는 동거와 동시에 한씨의 자영업에 동참했다. 이들은 24시간 함께 있다시피 하면서도 수시로 e메일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교환하며 애정을 표시한다. 다이어리에는 두 사람의 생리일을 다달이 기록해 놓은 이씨의 메모도 눈에 띄었다. 용도를 물었다. 이씨는 “생리하면 심적으로 불안해지고 예민해지는 경우가 있잖아요?”라며 “일자가 다가오면 미리 알리며 ‘서로에게 조심하자’고 한다”고 했다.

부부는 분양받은 아파트를 공동명의로 했다. 30년 뒤 실버타운에 입주하기 위해 적금도 붓고 있다.

한씨의 대학 선후배 대부분은 그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결혼이 임박해서야 알았다. 충격을 수습하기도 전에 더 큰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이 결혼을 남편에게 이해시킬까.’ 남편들 중 일부는 “그런 쓸데없는 자리에 왜 가느냐”며 호통쳤고, 일부는 “아기는 내가 볼 테니 염려말고 다녀오라”고 했다.

결혼식 하객 중 남자는 3명이었다. 한씨의 남자친구 양씨와, 한씨의 후배인 신모씨의 남편 송모씨(38·벤처기업연구원), 또다른 후배 이모씨의 남편 이모씨(37·보안경비업체 근무)였다. 9월 초 본가인 강릉을 향해 차를 몰고 올림픽대로를 달리던 이씨에게 옆에 있던 아내가 말을 꺼냈다.

“여보, 미진 언니가 결혼한대.”

“어, 그래? 미진씨가 결혼을 해? 허허, 남자에겐 관심도 없어 보였는데.”

“근데, 문제가 있어. 여자래, 상대가….”

당황한 남편은 중부고속도로 입구로 핸들을 꺾는 것을 잊었다. 미사리까지 가버렸다. 남편은 강변에 차를 세우고 2시간 동안 흐르는 강물을 쳐다보며 마음을 정리했다.

후배 신씨의 남편 송씨는 “아내로부터 얘기를 듣고, ‘미진씨가 레즈비언이라면 혹시 아내에게 접근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솔직히 가장 먼저 들었다”면서 “사랑이 뭔가, 사람이 만나서 사랑하고 생활을 함께한다는 것이 어떤 걸까 깊이 생각했다”고 했다. 송씨는 ‘화(anger)’란 책을 사 읽었다. 결국 딸 희영(가명·6)을 결혼식 들러리로 세우기로 결심했다. 결혼식 후 딸은 앞으로 한씨를 ‘삼촌’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이모’라고 불러야 하는지를 궁금해했다. 부부는 딸에게 “느낌이 오는 대로 부르라”고 했다.

결혼식에는 이성애 성향의 다수와 동성애 성향의 소수가 하객으로 참석했다. “5000년 역사에 남을 결혼식을 마친다”는 말로 결혼식 사회의 마지막 코멘트를 했던 권모씨(38·여·회사원)는 “사랑밖에는 어떤 조건도 없는 결혼식을 참 오랜만에 보았다”며 “평범한 결혼식이었다. 그래서 아름다웠다”고 했다.

부부는 10년 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감사의 파티를 열기로 약속했다.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