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
사람의 성(性)기관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무엇일까. 대개 배꼽 아래를 생각하기 십상이다. 발기한 음경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답은 페니스가 아니라 뇌다.
1973년 미국의 폴 매클린은 도마뱀에서 다람쥐까지 동물행동을 연구한 끝에 사람의 뇌가 진화과정에서 차례대로 발달한 세 부위로 구성되어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매클린이 발표한 ‘3부 뇌 모형’에 따르면 사람의 뇌는 파충류형 뇌, 변연계, 신피질의 세부분이 서로 연결돼 있다.
파충류는 3억년 전에 지구상에 출현해 2억년 전에 하등 포유류로 진화됐기 때문에 사람의 파충류형 뇌는 약 2억∼3억년 전에 발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파충류형 뇌는 인간 생존의 기본조건인 호흡과 같은 일상적 행동의 조정에 관여한다.
이 파충류형 뇌를 둘러싼 부분은 하등 포유류의 뇌와 비슷한 변연계다. 변연계는 시상하부, 해마, 뇌하수체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시상하부는 성욕을 일으키며 성 호르몬의 분비를 조절한다. 뇌하수체는 시상하부로부터 신호를 받으면 성선자극 호르몬을 분비한다. 이 호르몬은 난소나 고환을 자극해 성 호르몬을 분비시킨다.
포유류가 진화해 영장류가 출현함에 따라 인간의 뇌에는 마지막으로 신피질이 발달했다. 파충류형 뇌와 변연계가 사람의 동물적 본능을 지배하는 ‘원시적 뇌’라면 인간 뇌의 90%를 차지하는 신피질은 원시적 뇌를 통제해 인간이 ‘이성의 동물’일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이성의 힘이 순간적으로 약화될 때마다 원시적 뇌가 주도권을 잡게 되며 인간은 원시적 뇌에 고정된 공격성 잔인성 성욕 따위의 충동에 휘말린다. 인간이 두 얼굴을 갖게 되는 까닭이다.
성적 충동을 관장하는 중추가 변연계에 진화된 이유는 종의 영속을 위해 번식이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다. 간혹 ‘인간의 종족보존 욕망은 본능인가’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평생 금욕의 계율을 지키는 수도사의 예를 들어 본능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는 ‘이성의 뇌’인 신피질이 ‘원시적 뇌’인 변연계가 관장하는 번식 본능을 통제하는 드문 사례일 뿐 종족번식은 본능이다.
‘종족보존이 본능인가’에 의문을 품게 되는 또 다른 배경이 있다. 인간의 경우 성행위와 번식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아기 시술처럼 섹스가 수반되지 않는 생식이 있는가 하면 피임기술의 발전으로 생식과 무관한 섹스 역시 다반사이다.
그러나 인류가 아기를 갖고 싶을 때 갖고, 낳기 싫으면 낳지 않는, 이른바 생식 조절 기술을 손에 넣은 것은 의학기술의 발달과 무관하게 아주 오래된 일이다. 아득히 먼 옛날 여성의 발정기가 사라진 것을 계기로 섹스가 생식과 분리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영장류 암컷의 발정기는 대개 한 달에서 일주일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막상 발정기에 돌입하면 암컷은 수컷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해 번식하지만 발정기가 지나면 성행위에 흥미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발정기를 잃어버린 인류의 여성은 일년 내내 어느 때든 발정이 가능한 남성에 조응할 기관이 필요했다. 이런 조건에서 여성의 놀라운 생물학적 수용능력을 보여준 기관이 바로 클리토리스다.
사람의 경우 태아의 동일 조직이 호르몬에 의해 페니스 또는 클리토리스로 분화된다. 그러나 그 기능은 완전히 다르다. 남성의 페니스는 생식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기관이지만 클리토리스는 생식에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오로지 섹스를 위해 존재할 따름이다. 대다수의 여성들이 질보다는 클리토리스의 자극으로 오르가슴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1세기에는 남성의 페니스 역시 클리토리스처럼 성적 쾌감을 위한 전문 조직으로 진화 혹은 퇴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의학기술에 의해 섹스와 생식의 분리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사 한 대면 1년 동안 피임이 가능한 백신이 개발돼 섹스를 즐기면서도 임신의 공포에서 해방될 터이다. 다양한 체외수정 시술을 활용해 침대보다 시험관에서 맞춤아기를 만들어내는 부부도 적지 않아질 것이다. 사이버섹스 등 성기의 삽입 없이 성욕을 충족시키는 기술도 더 고도화될 전망이다. 성적본능을 제어하는 뇌의 신경회로를 전기적으로 자극해 아무 때나 오르가슴을 느끼는 장치도 나타날 것이다.
마침내 섹스와 생식의 분리가 일상화되면 페니스 역시 클리토리스처럼 오로지 쾌락만을 위한 기관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성과학 탐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