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투명성’만큼 각광받는 낱말도 없다. 기나긴 권위주의의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어느덧 투명성은 선이고 그 반대는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생겨났다. 햇빛 쏟아지는 광장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 어두컴컴한 밀실에서 마구 이뤄지던 시대에 넌더리가 났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공적인 일이라 하여 모두 유리알처럼 투명해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더러는 우물속처럼 그윽해야 하는 것도 있어야 한다. 그 양면이 두루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범위의 차이는 있으나 대개의 경우 그 양면이 모두 존재하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무능한 국가경영에 국민 혼란▼
투명함은 누구나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열려 있는 데에서 온다. 반면 그윽함은 아무나 들여다 볼 수 없도록 닫혀 있거나 들여다보아도 잘 보이지 않도록 가려져 있는 데에서 온다. 그렇다고 하여 그 그윽함이 음험하거나 깜깜하여서는 안 된다. 의식적으로 다소의 틈새를 벌려놓거나 소수이기는 하지만 한정된 사람들에게는 열어둠으로써 상호견제와 균형을 통해 그윽함의 건강성을 담보해야 한다.
이 투명한 부분과 그윽한 부분이 각기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즉 본래 간직하고 있어야 할 투명함과 그윽함을 유지하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공공부문의 안정성이 확보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최근의 우리 경험은 아주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특히 공적분야에서 이 투명함과 그윽함의 일탈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절감하게 된 까닭이다.
투명해야 할 부분은 캄캄하게 닫혀 있고 그윽해야 할 부분은 마구 열어 젖혀지고 들춰지고 까발려지고 있다. 현대상선의 4000억원 대출과 4억달러 대북비밀지원 의혹은 이런 문제점들이 뒤섞여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공개기업에서 4000억원이라는 거액의 대출금이 어디에 쓰였느냐 하는 문제는 큰 줄기에서는 투명함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 투명해야 할 영역이 국민적 의혹제기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그것이 의혹을 증폭시켜 대북비밀지원이라는(실제로 있었다고 하더라도 일단 그 당부(當否)를 따지는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당장은 공개되어서는 안 될 전형적인 그윽함의 영역이 백일하에서 거센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공개기업과 비밀지원이라는 잘못된 조합에서, 또 비밀로 하거나 단순한 지원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엄청난 규모로 인해 의도나 효과가 의심되는 데에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우선 이런 일들을 벌어지게 한 국가경영자들의 경영능력을 비판해야 마땅하다. 불법이라면 그것대로, 부당하다면 또 그것대로 엄히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이도저도 아니거나 도대체 실체마저도 없다면 또 그것대로 제대로 갈무리와 마무리를 하지 못하는 국가경영자들의 무능을 탓해야 한다.
그러나 책임소재가 판명되었다고 문제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수습이란 과제가 남아 있다. 실체 유무를 밝히는 것이 크게 보아 이로울 것이 없다면 조용히 매듭지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제대로 파헤쳐 보아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정권의 레임덕과 대권 경쟁에서의 네거티브 캠페인까지 맞물려 있으니 더욱 예측불능이다.
▼절제된 문제제기 방식 택해야▼
그럼에도 정부, 정치권, 언론 등은 서로 머리를 맞댈 생각은 없이 그저 가는 데까지 가보자는 심산인 모양이다. 그러니 국민의 혼란과 불안이 오죽하겠는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 현직 정보관련 고위 공직자들이 북한의 도발징후 묵살의혹을 제기하고 국가정보원의 도청자료 입수설을 공언하고 나섰다. 고급정보업무의 왜곡과 노출이 이 지경에 이르렀어도 나라의 근간이 제대로 서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용기있는 ‘내부고발’인지, 권력누수기의 ‘줄대기’인지도 물론 엄중히 따져야 한다. 그러나 급선무는 가중되는 불안과 혼란을 제거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남들이 안 본다고 그윽한 영역을 사유화하고 있는 권력자는 이를 당장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반대자들도 제발 제 낯에 침 뱉는 일,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하는 일이라면 문제제기 방식부터 절제의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뿔 고치려다 소까지 잡을 수야 없지 않은가.
박인제 변호사·객원논설위원 ijpark235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