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라이제이션이란 무엇인가/이요타니 토시오(伊預谷登士翁) 지음/헤본샤(平凡社) 2002년
‘글로벌라이제이션’이란 말에서 떠올리는 인상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 인터넷과 같은 정보기술의 진보를 염두에 두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IMF나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적 경제기관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민으로 대표되는 국제노동력의 이동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맥도널드나 디즈니랜드와 같은 소비문화를 연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연상 중 어느 하나도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들 모두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중요한 측면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갖가지 현상들을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는 틀 속에 공존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의문을 떠올려 봄직하다.
저자인 이요타니 토시오는, 최근 정치와 문화의 영역을 포함한 ‘글로벌라이제이션 연구’ 1인자로서 매우 활발히 활동중인 국제경제학자이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말하는 글로벌리제이션은 1980년대에서부터 1990년대에 걸쳐서 일어난 변화다. 그 때부터 사람들은 공동체나 국가 등 ‘아무런 의심도 없이 의지해 온’ 사회조직이 붕괴되어 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막연한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완전고용을 실행하고 있던 기업은 인원의 ‘합리화’ 즉 해고에 착수했고, 국가의 복지정책이나 공공정책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아래에서 약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은 바로 이 같은 불안 속에서 등장한 것이다.
이요타니는 글로벌리제이션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의 하나로 근대를 지탱해 온 국민국가이념의 붕괴를 든다. 반글로벌라이제이션 운동이 쉽사리 공동체주의나 내셔널리즘의 형태를 띠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저자에 의하면 글로벌라이제이션과 내셔널리즘은 언뜻보면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심층에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가 있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 주는 공범 관계에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요타니의 사회과학 비판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지금까지의 사회과학이 무의식 중에 국민국가의 존재를 전제로 한 ‘내셔널한’ 학문이었다고 비판한다. 다시 말해, 사회과학은 국가의 동화정책의 대상이 된 마이너리티나 국가의 외부로 빠져 나간 이민 등을 부수적인 현상으로 파악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가 이질적인 요소를 배제하는 것이 국민국가의 명제였다고 한다면, 마이너리티나 이민문제 등은 근대의 가장 깊숙한 밑바닥에 침전되어 있는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렇게 근대가 무의식적으로 은폐해 온 문제들을 ‘글로벌라이제이션 연구’를 통해 광장으로 끌어낼 때 심도있는 근대비판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요타니에 있어서 글로벌리제이션 비판은 결코 근대에로의 회귀가 아닌, 총체로서의 ‘근대’를 다시 돌아보고 검토하는 태도로 연결된다.
이요타니는 이 책에서 몇 번이고 ‘글로벌리제이션을 비판하면서 내셔널리즘에 빠지지 않는 길은 매우 곤란한 과제’라고 토로한다. 그러나 이 ‘곤란한 과제’와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고서는 인간성을 회복한 사회의 이념을 결코 그려 낼 수 없을 것이다.
이연숙 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 ys.lee@srv.cc.hit-u.ac.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