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간에서 행자가 밥을 짓고 있다. 호미수좌도 이곳에서 중노릇의 기본을 배웠을 것이다. 사진제공 현진스님
해인사에는 ‘호미수좌’ 이야기가 전한다. 학창시절 학교마다 선배들의 기행(奇行)이 후배의 입을 통해 전설이 되는 경우가 있질 않은가. 이처럼 호미수좌의 수행 일화는 지대방(스님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차를 마시는 뒷방)의 단골 메뉴로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호미수좌는 실제 인물이었지만 얼굴이나 진짜 법명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다. 다만 수좌(首座·선방에서 참선하는 스님을 일컫는 말)로서 항상 호미를 지니고 다녔기 때문에 ‘호미수좌’라 불렀다는 것이다.
‘호미수좌’는 해인사 행자실의 기강과 자세를 군대 내무반에 준할 정도로 절도 있고 엄격하게 바꾼 주인공이다. 해병대 출신이었던 그가 고참 행자가 되면서 행자실 분위기를 군대식 동작과 구호를 도입하여 처음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 때는 공양을 할 때도 해병대 병사처럼 ‘직각 식사’를 할 정도였으며 심지어는 대답을 할 때도 ‘예, 그렇습니다!’라고 할 만큼 절에서도 군기를 잡았단다. ‘호미수좌’의 이 같은 업적(?) 때문인지 아직까지 해인사 행자실은 그 질서와 규칙이 군대의 조직과 너무나 흡사하다. 그래서인지 해인사 행자생활은 해병대 훈련에 버금 갈 만큼 힘들다.
‘호미수좌’는 그 이름처럼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잘 때도 호미는 빼놓지 않고 꼭 지녔다는데 호미 날은 닳아서 아주 무디었다. 그러니까 그 호미는 흉기로 들고 다닌 것이 아니라 밭일 할 때의 자세처럼 마음을 날마다 갈무리한다는 뜻이었다.
뭐니뭐니해도 ‘호미수좌’가 일약 산중의 스타가 된 것은 성철스님과 나눈 법거량(法擧量·스승을 찾아 공부를 점검 받는 일) 때문이다. 백련암을 찾아간 ‘호미수좌’가 성철스님 앞에 호미를 내 놓고 일구(一句)를 던졌다.
“삼삼(三三)은 구(九)!”
이윽고 ‘호미수좌’에게 돌아온 전광석화 같은 성철스님의 댓구(對句)는 이 한마디였다.
“구구(九九)는 팔십일(八十一)이다, 이 놈아!”
구구단 외기 같은 이 게임은 누가 이긴 걸까. 선문답에는 모범답안이 없다. 다만 그 다음날 ‘호미수좌’는 걸망을 챙기고 일주문을 내려갔다는 이야기만 전해질 뿐 이다.
해인사 포교국장 buddha122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