畵 龍 點 睛(화룡점정)
畵-그림 화 睛-눈동자 정 祖-조상 조
昇-오를 승 轟-울릴 굉 終-마칠 종
率居(솔거)는 신라 眞興王(진흥왕) 때 화가다. 그가 皇龍寺(황룡사)의 벽에 老松圖(노송도)를 그리자 새들이 착각하고 날아들다 벽에 부딪쳐 죽었다고 한다. 그만큼 실감나게 그렸다는 뜻일 게다.
비슷한 이야기가 중국에도 전해져 온다. 南朝(남조) 梁(양)나라의 화가 張僧繇(장승요)는 불교 인물화와 山水畵(산수화)의 大家(대가)다. 후세 사람들은 그를 顧愷之(고개지) 陸探微(육탐미) 吳道子(오도자)와 함께 중국 畵壇(화단)의 四祖(사조)로 추앙한다.
한 번은 金陵(금릉·현재의 南京)의 安樂寺(안락사)로부터 龍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거절할 수가 없어 응락했다. 벽에다 모두 두 마리를 그렸는데 어찌나 잘 그렸는지 생동감이 넘쳐 마치 살아 용트림을 하는 듯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찬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의아한 구석이 있었다.
“기가 막히게 그리기는 했는데 눈동자가 없어서….”
사람들은 張僧繇에게 눈동자를 그려 넣으라고 졸라댔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일부러 빠뜨린 것이오. 눈동자를 그려 넣게 되면 龍이 昇天(승천)하고 말 것이오.”
하지만 성화에 못 이겨 붓에다 먹을 듬뿍 찍어 한 마리의 龍에다 눈동자를 그려 넣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눈동자를 그려 넣는 순간 천지를 진동하는 듯한 轟音(굉음)과 함께 벽이 갈라지더니 龍이 정말로 昇天하는 것이 아닌가. 다만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은 나머지 龍 한 마리는 아직 그대로 있었다.
유명한 畵龍點睛의 고사다. ‘龍을 그리면서(畵龍) 눈동자에 점을 찍었다(點睛)’는 뜻으로 어떤 사물에서 최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처리함으로써 비로소 완성을 본다는 뜻이다. 곧 核心(핵심)을 완성한다는 뜻이기도 하다.‘有終(유종)의 美(미)’라고나 할까.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고자 한다. 畵龍點睛이라면 작품에 혼신의 정열을 기울인다는 뜻도 있다. 중국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사물의 드러난 모습보다는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정신의 표현에 더 치중한다. 똑같이 그리는 것을 ‘形似’(형사)라고 하는데 蘇東坡(소동파)는 그런 그림을 ‘어린애 장난’이라고 혹평했다. 곧 寫實(사실)보다는 寫意(사의)를 더 중시한다. 그래서 山水畵를 보면 산이 산 같지 않고 물이 물 같지 않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앞서의 率居가 寫實에 치중했다면 張僧繇는 寫意에 치중한 셈이 되지 않을까.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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